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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이 그렇게 어려운가요」(시인 조용미)   2009년 7월 10일





 





시인과 소설가는 동류인 줄 알았다. 사실 그렇기도 하지만 동류도 아주 다른, 이보다 더 다를 수는 없는 동류다. 일상은 시의 적인가. 시는 정말 일상의 반대편에 서 있기만 한 것인가.


 


특별히 가까이 지내본 소설가가 없어서 나는 소설가나 시인이나 같은 글쟁이이므로 동일한 안테나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로 생각했다. 그러나 몇 안 되지만 내가 겪어 본 바로, 우리는 같은 동네에만 살지 집의 크기도, 위치도, 창문의 방향도 거의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사람들임을 어렵지 않게 알게 되었다.


 


외국인과의 결혼 뒤에는 영주권이 있고, 이방인에 대한 견제 뒤에는 국수주의가 있고, 고슴도치의 털 뒤에는 우아함이 있다지만, 시의 뒤에는 시인이 있고, 시인의 뒤에도 시가 있을 뿐이다.


 


얼마 전에 소설 쓰는 후배를 만나기로 했다. 만날 장소로 나가려다 아무래도 장소를 변경해야 할 것 같아서, 약속시간이 한 시간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조금 다급한 마음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쪽엔 아는 식당이 없어. 인사동에서 만나 삼청동 쪽으로 가야겠어. 그 건너편 저쪽으로‥> 약간의 불안감은 있지만 나는 우리가 움직일 동선이며 만날 장소를 눈앞에 그리며 또박또박 문자를 눌렀다. 조금 지난 후에 답이 왔다. <네. 종로경찰서 길 건너편 삼청동 입구에서 뵐게요.> 몸에 착 감기는 것 같은 답이라 얼른 문자를 보냈다. <맞아. 바로 내가 표현하려던 말이야. 곧 보도록 하자.>


 


그 날 후배가 만나서 한 말을 옮겨 보자면 이렇다. “저는 선배님 문자 받고 설마 이 메시지가 끝은 아니겠지 하고 다음 문자를 기다렸어요. 그런데 더 이상 문자가 없어서, 설마하던 마음을 포기하고 답을 드렸어요. 그런데, 맞아 바로 이게 내가 표현하려던 그 말이었다니. 어휴, 선배님 저니까 이 말을 알아 들었지 다른 사람 같으면 어림도 없어요.” 그동안 내 화법에 약간이나마 단련이 되어 말을 알아 들은 거라는, 그런 요지의 말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후배에게 말했다. “아니, 그, 건너편, 거기다 저쪽이라고까지 했으니 그보다 더 정확한 말이 어디 있어? 너는 어쩌면 그렇게도 말을 정확하게 할 수 있는지 부러워. 역시 소설가는 다르구나.”


 


운전 중인 누군가에게 전화로 길을 알려 줄 일이 있었다. 나는 친절하게 성심을 다해 설명했다. “거기서 앞을 쭉 바라보면 나무들 중에 유난히 녹색빛이 짙은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거기서 우회전하면 돼.” 상대방은 못 참겠다는 듯 버럭 화를 냈다. 운전 중인 사람에게 그렇게 설명을 하면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후배에게 며칠 후 이메일을 받았는데 끝이 이랬다. ‘선배님 말씀을 신통하게도 잘 알아 듣는 후배 OO 올림’






















■ 필자 소개


 




조용미(시인)


1962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1990년 《한길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삼베옷을 입은 자화상』『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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