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8241 추천 수 1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친구를 찾습니다」(소설가 한창훈)   2009년 6월 8일_스물아홉번째





 





중년에 접어들면서 예전 친구들이 생각나곤 합니다. 요즘은 무엇을 하는지, 자식들은 어떻게 자라는지, 큰 병이나 앓고 있지는 않는지 궁금하죠. 간혹 보기도 하고, 못 본다 하더라도 그럭저럭 근황을 듣기는 하는데 그중에는 전혀 소식을 모를 친구도 있게 마련입니다.


저에게는 인규라는 친구가 그렇습니다.


인규는 고등학교 때 친구였습니다. 일생 중에서 가장 감정적이고 불안한 시기를 함께 보냈으니 유난히 추억거리가 많죠. 서로의 자취방을 숱하게 오가며 라면 끓여먹고 팔씨름도 하고 술에 취하면 쓸쓸한 노래도 함께 불렀습니다. 담양에 있는 그의 집에서 딸기밭 갈고 소똥도 같이 치웠죠.


심지어 낭인처럼 세상을 돌아다니던 20대 초반, 지쳐 버린 저는 한동안 그의 자취방에서 밥 끓여먹으며 지내기도 했습니다. 만나면 반갑고 떨어지면 서운하고 못 보면 엉덩이가 근질근질한 그런 사이였죠.


저는 20대 후반에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한 시절 또 떠돌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를 만났죠. 졸업반 취업 준비 중이던 그는 내 몰골을 보더니 혀를 차며 식당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토플, 공무원 시험, 기업의 면접 형태 따위가 자꾸 나왔죠. 내가 심드렁하자 따지듯 물어 왔습니다.  


“너는 임마, 도대체 어떻게 살려고 아직도 이 따위로 돌아다니는 거냐.”


나는 소설가가 되겠노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피싯, 피싯 웃었습니다.


“소설가가 된다고?”


“그래.”


“소설가 다 뒈졌는갑다. 개나 걸이나 다 소설가 되는 줄 알어.”


“왜, 나는 소설가 되면 안 되냐?”


가소롭다는 얼굴을 하던 그는 별안간 열 손가락을 쫙 펴보였습니다.


“뭔데?”


“니가 소설가가 되면 이 열 손가락 모두 장을 지진다.”


“정말?”


“걱정 말고 돼 보기나 해라.”


득의만만한 웃음은 쉬 떠나지 않았는데 그게 마지막으로 본 거지 뭡니까. 오래 전 통화가 한두 번 되었는데 첫 번째 소설집이 나온 뒤로는 전혀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이 친구를 찾습니다.














■ 필자 소개


 




한창훈(소설가)


1963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가던 새 본다』『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청춘가를 불러요』가 있다. 산문소설 『바다도 가끔은 섬의 그림자를 들여다 본다』와 장편소설『홍합』『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열 여섯의 섬』등이 있다. 동화 『검은섬의 전설』과 공동 산문집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를 펴냈다. 제3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3922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2867
2523 그렇게도 가까이! 바람의종 2009.05.28 4911
2522 "내가 늘 함께하리라" 바람의종 2009.05.28 7322
2521 「그 모자(母子)가 사는 법」(소설가 한창훈) 바람의종 2009.05.28 6042
2520 「개는 어떻게 웃을까」(시인 김기택) 바람의종 2009.05.28 10886
2519 먼 길을 가네 바람의종 2009.05.29 5367
2518 역경 바람의종 2009.05.30 5663
2517 소망의 위대함을 믿으라 바람의종 2009.06.01 5259
2516 「인생재난 방지대책 훈련요강 수칙」(시인 정끝별) 바람의종 2009.06.01 7121
2515 지난 3년이 마치 꿈을 꾼 듯 바람의종 2009.06.09 5467
2514 「충청도 말에 대하여」(소설가 한창훈) 바람의종 2009.06.09 6336
2513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시인 정끝별) 바람의종 2009.06.09 5997
2512 '안심하세요, 제가 있으니까요' 바람의종 2009.06.09 3785
2511 「스페인 유모어」(시인 민용태) 바람의종 2009.06.09 7874
2510 「내 이름은 이기분」(소설가 김종광) 바람의종 2009.06.09 8408
2509 나무 명상 바람의종 2009.06.09 5853
2508 「그녀 생애 단 한 번」(소설가 정미경) 바람의종 2009.06.09 10016
2507 우리 사는 동안에 바람의종 2009.06.09 5736
2506 1cm 변화 바람의종 2009.06.09 5105
» 「친구를 찾습니다」(소설가 한창훈) 바람의종 2009.06.09 8241
2504 아이의 웃음 바람의종 2009.06.09 6392
2503 「똥개의 노래」(소설가 김종광) 바람의종 2009.06.09 6566
2502 뿌리를 내릴 때까지 바람의종 2009.06.10 5351
2501 「부모님께 큰절 하고」(소설가 정미경) 바람의종 2009.06.10 6597
2500 지금의 너 바람의종 2009.06.11 7331
2499 젊었을 적의 내 몸은 바람의종 2009.06.12 578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 121 Next
/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