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336 추천 수 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충청도 말에 대하여」(소설가 한창훈)  2009년 6월 2일_스물네번째





 





(비참하고 슬픈 이야기이긴 하지만)


 


몇몇 사람들 사이에는 5, 6공 시절, 운동권 대학생 잡아들여 취조 고문을 하던 이의 사적인 증언이 떠돌았다. 그자의 말에 의하면 삼남(경상 전라 충청)의 특성이 취조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먼저 경상도 학생. 잡아 족치면 한번에 다 분단다. 그 다음 전라도 학생. 족친 만큼만 분단다. 다음날 조금 더 조져 보면 그만큼만 더 나온단다. 가장 독한 애들은 바로 충청도. 아무리 족쳐도  


 


“물류. 그게 아뉴.”


 


소리만 한단다. 빨리 안 불어? 아무리 때리고 거꾸로 매달아도, 뭔 소리를 하는지 당췌 물르겄슈, 잘못 아신규, 소리만 해서 결국 내보내고 말았단다. 뒷날 알고 보니 내보낸 학생이 그들이 찾고 있던 사람이란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충청도 출신 어느 시인 왈.


 


“독해서 그러기버덤은 갸도 말을 하려고 했을 겨. 막 실토하려고 하는데도 말 안한다고 두들겼을 겨. 그러니 원제 말을 햐.”


 


삼남의 기질 차이는 말투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경상도 말은 왜 그렇게 짧고 공격적일까. 답은 산이 높고 날카로워서. 어떤 방문자라도 불쑥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미 눈앞이라 재빠르게 대응할 수밖에 없어서.


 


전라도는 리듬을 타야 한다. 산이 낮지는 않지만 구릉이 많고 완만하여 그렇다고 본다. 그럼 충청도는? 평야가 넓은 곳이다. 모르는 이가 저만치에서 나타나면 궁리하기 시작한다. 삼국시대부터 그랬다. 침범이 잦았던 탓에 저것들이 고구려일까, 신라일까, 우리 백제일까, 정보가 모아질 때까지 판단을 유보한다. 그러기에 직설이 없다.


 


충청도 말이 느린 것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대답 없이 가만히 있는 것도 그 이유이다. 직설이 없다 보니 비유가 발달했다.  


 


충청도를 배경으로 비유의 언어를 가장 뛰어나게 구사한 분이 돌아가신 명천 이문구 선생이다. <보기 싫은 새끼>가 충청도 언어로 가면 <장마철에 물걸레 같은 새끼>가 된다.


 


일전에 친구들과 술집엘 갔다. 안주가 마땅찮아 주저하고 있는데 빨리 안 시킨다고 안주인이 구시렁거렸다. 내가 나서서 한마디 했다.    


 


“뱃속에 간도 있고 쓸개도 있고 곱창도 있고 다 있는데 뭐하러 안주 먹어요. 술만 넣어 주면 되지.”


 


이문구 선생의 단편 <우리동네 김씨>에 나오는 말이다.


 


이정록 시인도 충청도 출신이다. 그가 최근에 아들 운동화를 빨다가 갑자기 무릎을 치며 웃었다. 자기가 아들녀석 나이였을 때 뭔가를 잘못해서 선친께 욕을 먹은 적이 있었다. <저 운동화나 씹어 먹을 자식>이 그건데 무슨 내용인지 오래도록 알지 못하다가 아들 운동화 빠는 순간에 깨달은 것이다(도대체 무슨 말일까. 힌트. 댓돌에 신발 벗어 놓으면 누가 와서 이빨로 씹을까).


 


요즘 그는 아들이 잘못했을 때 해줄, 상처가 되지 않고 되레 웃음이 나는 그런 욕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 필자 소개


 




한창훈(소설가)



1963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가던 새 본다』『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청춘가를 불러요』가 있다. 산문소설 『바다도 가끔은 섬의 그림자를 들여다 본다』와 장편소설『홍합』『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열 여섯의 섬』등이 있다. 동화 『검은섬의 전설』과 공동 산문집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를 펴냈다. 제3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3922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2867
2523 그렇게도 가까이! 바람의종 2009.05.28 4911
2522 "내가 늘 함께하리라" 바람의종 2009.05.28 7322
2521 「그 모자(母子)가 사는 법」(소설가 한창훈) 바람의종 2009.05.28 6042
2520 「개는 어떻게 웃을까」(시인 김기택) 바람의종 2009.05.28 10886
2519 먼 길을 가네 바람의종 2009.05.29 5367
2518 역경 바람의종 2009.05.30 5663
2517 소망의 위대함을 믿으라 바람의종 2009.06.01 5259
2516 「인생재난 방지대책 훈련요강 수칙」(시인 정끝별) 바람의종 2009.06.01 7121
2515 지난 3년이 마치 꿈을 꾼 듯 바람의종 2009.06.09 5467
» 「충청도 말에 대하여」(소설가 한창훈) 바람의종 2009.06.09 6336
2513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시인 정끝별) 바람의종 2009.06.09 5997
2512 '안심하세요, 제가 있으니까요' 바람의종 2009.06.09 3785
2511 「스페인 유모어」(시인 민용태) 바람의종 2009.06.09 7874
2510 「내 이름은 이기분」(소설가 김종광) 바람의종 2009.06.09 8408
2509 나무 명상 바람의종 2009.06.09 5853
2508 「그녀 생애 단 한 번」(소설가 정미경) 바람의종 2009.06.09 10016
2507 우리 사는 동안에 바람의종 2009.06.09 5736
2506 1cm 변화 바람의종 2009.06.09 5105
2505 「친구를 찾습니다」(소설가 한창훈) 바람의종 2009.06.09 8239
2504 아이의 웃음 바람의종 2009.06.09 6392
2503 「똥개의 노래」(소설가 김종광) 바람의종 2009.06.09 6566
2502 뿌리를 내릴 때까지 바람의종 2009.06.10 5351
2501 「부모님께 큰절 하고」(소설가 정미경) 바람의종 2009.06.10 6597
2500 지금의 너 바람의종 2009.06.11 7331
2499 젊었을 적의 내 몸은 바람의종 2009.06.12 578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 121 Next
/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