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092 추천 수 1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그 모자(母子)가 사는 법」(소설가 한창훈)   2009년 5월 26일_스물한번째





 





그렇다면 어머니와 아들은 어떤가.


오래 전 나는 시골 친구 집엘 무작정 찾아들어간 적이 있다. 당시 친구는 군 제대를 하고 복학을 기다리고 있었다. 응석받이 막내아들이 군대엘 간다고 땅바닥치며 어머니 울던 시절도 다 지나고, 아이고 삼 년 동안 탈 없이 지내다가 돌아와 주어서 고맙다, 껴안던 장면도 시들어진 다음이었다.


때는 가을 추수철. 친구는 끝없는 들판 일이 지겨워, 내가 왜 제대를 했나, 한탄을 하고 있었다. 나는 당장 갈 곳이 없었고 그 집에서는 바쁜 시절에 장정 하나 찾아온 게 손해는 아니었다.   


한 보름 지나 그곳을 떠날 때가 되었다. 문제는 내 주머니에 한 푼도 없다는 데 있었다. 친구는 엄마를 졸랐다. 내 차비 명목으로 돈을 내놓으라는 거였다. 가난한 시골살림 증거는 어머니의 주머니가 으뜸이다. 어머니는 꼬깃꼬깃 만 원 한 장을 내놓았다. 친구는 더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그 돈이면 서울도 충분히 가겠다. 뭐가 더 필요하다냐?”


맞는 말이었다. 나는 친구를 한쪽으로 잡아끌었다. 그러나 밸이 뒤틀려 버린 그는 만 원짜리를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이것을 돈이라고 줘? 얘가 먹고 놀았소? 그동안 일한 것을 돈으로 쳐도 몇 만 원은 되겠구만.”


(내 핑계로 우려내서 지가 좀 쓰려고 했다는 고백이 나중에 있었지만 어쨌든) 어머니도 지지 않았다.


“에미한테 하는 짓 보소? 그렇다면 하루 세 끼 꼬박꼬박 먹이고 재운 것은?”


둘은 감정이 상해 갔다. 내 낯이 있지 어떻게 달랑 만 원만 주느냐? 돈이 없는 것을 어떡한단 말이냐, 거짓말 마라 고춧가루값 받은 거 봤다, 어린애들처럼 떼만 쓰면 대수냐, 나도 제대해서 이때껏 일했는데 용돈 한푼 제대로 안 주었지 않느냐, 개학하면 돈을 다발로 들고 갈 놈이 집에서 뭔 돈을 쓴다고 난리냐… 뭐 그렇게 싸움은 격해져 갔다. 밀려난 나만 아주 이상하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친구는 결국 최후의 수단까지 꺼내고 말았다.


“제기랄, 이렇게 하려면 뭐하러 놨어. 낳지 말지 뭐한다고 나를 놨냐고?”


내가 달려들어 입을 틀어막았으나 늦고 말았다. 나를 왜 낳았느냐. 부모 입장에서 듣기에 가장 괴로운 말 아닌가. 그러나 어머니는 같잖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바로 반격을 했다.


“내가 놨다냐?”


“그럼, 엄마가 안 낳고 누가 났어?”


“나는 다른 놈 낳으려고 했는데 네가 아득바득 용을 쓰고 기어 나왔지.”


친구는 역전타 한 방에 나가 떨어졌다.


지금도 손자 보러 올라오면 그 정도 투덕거리면서 지낸단다.


 














■ 필자 소개


 




한창훈(소설가)


1963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가던 새 본다』『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청춘가를 불러요』가 있다. 산문소설 『바다도 가끔은 섬의 그림자를 들여다 본다』와 장편소설『홍합』『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열 여섯의 섬』등이 있다. 동화 『검은섬의 전설』과 공동 산문집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를 펴냈다. 제3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7782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6870
2527 우두머리 수컷 침팬지 風文 2020.05.08 602
2526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風文 2022.08.18 602
2525 밧줄 끝에 간신히 매달려서... 風文 2019.08.16 603
2524 '그래, 그럴 수 있어' 風文 2019.08.16 603
2523 중간의 목소리로 살아가라 風文 2021.11.10 603
2522 내가 나를 어루만져 준다 風文 2019.08.10 604
2521 타인이 잘 되게 하라 風文 2022.05.23 605
2520 상대와 눈을 맞추라 風文 2022.05.10 606
2519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9.3.미트라 風文 2023.11.24 608
2518 행복은 우리에게 있다 風文 2019.08.14 609
2517 '혼자 노는 시간' 風文 2019.08.28 609
2516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행복할 때 風文 2022.05.09 609
2515 미세먼지가 심해졌을 때 風文 2022.05.12 610
2514 거절의 의미를 재조명하라 風文 2022.09.16 610
2513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7.2. 風文 2023.11.15 610
2512 머나먼 여행을 떠났다 돌아왔다 風文 2022.05.09 612
2511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고대문명 風文 2023.04.18 612
2510 카오스, 에로스 風文 2023.05.12 612
2509 인생의 명답 風文 2019.08.06 613
2508 화가 날 때는 風文 2022.12.08 613
2507 내가 놓치고 있는 것 風文 2023.04.21 613
2506 자제력과 결단력 風文 2019.09.02 614
2505 전국에 요청하라 風文 2022.10.28 614
2504 이가 빠진 찻잔 風文 2019.08.06 615
2503 당신을 만난 것이 행복입니다 風文 2019.09.02 61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