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8028 추천 수 1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 外其身而身存.
非以其無私邪? 故能成其私.
                                                     『노자』 7장 中

하늘은 너르고 땅은 오래간다. 하늘과 땅이 능히 너르고 오래갈 수 있음은, 자기의 삶을 조작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능히 오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하므로 성스러운 사람은 몸을 뒤로 하기에 그 몸이 앞서고, 그 몸을 내던지기에 그 몸이 존한다. 이것은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능히 사사로움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무(無)의 상태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무의 상태란 아무 것도 없음이다. 그런데 그 아무것도 없음엔 담을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모두 털어냄으로써 그 어떠한 것도 담을 수 있는 무한한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능히 사사로운” 것들을 담아낼 수 있게 된다.



생의 사사로움 이란 무엇일까? 한 끼 식사를 해결하고, 그 식단 안에 3대 영양소를 골고루 배합하는, 더 나아가 3대 영양소를 포함하면서도 혀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혀를 만족시켜 주는 것과 동시에 분위기 있는 장소에서 근사한 옷을 맘껏 뽐내며, 멋스러운 여유를 즐기는 것. 그런데 그것은 한이 없다. 근사한 치마를 사면 그에 따르는 근사한 구두를 신어야 하고 또 그에 걸 맞는 핸드백과 스카프라든지 어울리는 아이템을 걸쳐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하는 것이다’라는 말에 있다. 한 끼 식사에는 분위기 있는 장소와 근사한 옷과 신발이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기에 말이다. 이것들은 분명 사사로운 것들이리라.


누군가를 미워하고 누군가를 시기하며, 반대로 누군가를 좋아하고 소유하고 싶어 하는 그러한 것들은 무엇인가? 이것 또한 ‘사사로움’ 혹은 ‘덧없음’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좋음’ 또는 ‘싫음’ 감정 자체는 사사로운 것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좋아하고 싫어하면서 생기는 그야말로 사사로운 감정의 격변들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 사람의 사소한 행동과 습관까지도 거슬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거슬림’은 자신의 행동과 마음까지 바꿔놓게 된다. ‘있는 대로의 현상과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대로 주위의 환경과 사람을 평가하고 규정짓는 데서 사사로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노자는 “몸을 내져짐으로 해서 몸이 존하고, 새로이 존한 몸으로 모든 사사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해탈’의 경지와 다름 아니다. 지고의 득도에 의한 어려운 해탈이 아니라, 나와 너를 이해하고 ‘너의 사사로움’을 인정할 때 생기는 작은 인정의 샘이 바로 무한의 그릇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몸을 내던지는 것만큼 어렵고도 쉬운 것은 없다. ‘될 대로 되라’의 자포자기적인 내던짐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고 삶의 작은 모든 것을 담을 소박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미 ‘무한그릇’의 초벌굽기는 마친 셈이다.








김시천 <도가사상과 현대철학: 노자부터 데리다까지> 제13강 형이상학에서 은유로 I 참고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4125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3015
3002 "여기 있다. 봐라." 風文 2014.08.11 9344
3001 "영원히 변하지 않는 영혼은 있는가?" 바람의종 2009.04.03 8403
3000 "왜 놓아주어야 하는가?" 바람의종 2010.10.22 3543
2999 "용기를 잃지 말고 지독하게 싸우십시오!" 바람의종 2008.12.12 5899
2998 "우리는 행복했다" 바람의종 2013.02.14 8169
2997 "울 엄마 참 예쁘다" 바람의종 2011.05.11 5438
2996 "이 남자를 꼭 잡고 말거야" 바람의종 2010.08.24 4521
2995 "일단 해봐야지, 엄마" 風文 2014.12.24 8075
2994 "저 사람, 참 괜찮다!" 바람의종 2010.05.18 3637
2993 "제 이름은 링컨입니다" 바람의종 2011.11.03 5142
2992 "차 한 잔 하실래요?" 바람의종 2011.01.23 4108
2991 "크게 포기하면 크게 얻는다" 바람의종 2010.10.04 3265
2990 "화려한 보석에 둘러싸여 살아왔어요" 바람의종 2010.06.09 3695
2989 '100 퍼센트 내 책임' 윤안젤로 2013.06.03 9933
2988 '10분만 문밖에서 기다려라' 바람의종 2009.01.23 4625
2987 '10분만 문밖에서 기다려라' 바람의종 2011.02.05 4417
2986 '5분'만 상상해도 좋은... 바람의종 2011.10.25 4325
2985 'GO'와 'STOP' 사이에서 風文 2021.09.13 271
2984 '간까지 웃게 하라' 風文 2014.12.30 6171
2983 '갓길' 風文 2014.09.25 10582
2982 '건강한 감정' 표현 風文 2023.09.21 408
2981 '건강한 피로' 風文 2023.10.17 561
2980 '걷기가 날 살렸다' 바람의종 2012.07.19 6409
2979 '겁쟁이'가 되지 말라 風文 2015.06.22 5507
2978 '겹말'을 아시나요? 風文 2022.01.30 38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