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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일은 안중근 선생이 태어난 날이다. 안중근 의사(義士)는 독립투사로 우리들 마음 깊이 영웅으로 자리잡고 있다. 1909년 10월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재무상과 회담하기 위해 만주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사살하기로 결심하였다. 이에 일본인으로 가장, 하얼빈역에 잠입하여 역전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곧 일본 관헌에게 넘겨져 뤼순의 일본 감옥에 수감되었고 이듬해 2월,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되어, 3월 26일 형이 집행되었다.
안중근은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정의로운 일을 한 의사(義士)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해서 본다면 그는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테러리스트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런던대 앤더슨 칼슨 교수는 고려대 국제하계학교 한국현대사 강의 중 김구, 이봉창, 윤봉길, 안중근 등을 테러리스트라고 하여 일부 학생들의 이의제기가 있었다. 이는 곧 인터넷게시판을 뜨겁게 달구었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였던 조선의 청년 안중근은 지금의 한국인들에게도 여전히 의사(義士)이고, 안중근의 거사는 정의롭다. 안중근의 행동이 정의로울 수 있는 기반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봤을 때 옳은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즉,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그 시간을 공유하는, 한반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안중근의 행위는 옳은 것이었다. 그 이유는, 한국인들이 공유하는 역사 지평 및 그 행위가, ‘한국식 인류애’ 실현에 기여한다는 역사 인식에 있다. 이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실존적인 시선’이다.



그러나 반대로 대다수 일본인에게 안중근은 기본적으로 ‘살인 사건’을 저지른 살인자일 뿐 아니라, 서양 제국주의에 맞서서 동양인들의 복리에 기여하고자 하는 일본에 맞선, 이른바 대동아 공영권에 해가 되는, 즉 일본인들의 역사 인식으로는 ‘일본식 인류애’ 실현의 장애물이다. 이것은 일본 국민으로서 ‘실존적인 시선’이다.


보통은 세상을 볼 때 이방인의 시선이나 제삼자의 시선에서 보는 데 익숙하다. 한국인의 역사 지평에 있지도 않고, 일본인의 역사 지평에 있지도 않은 제3자가 안중근 사건을 하나의 역사 사건으로 탐구하여 ‘참된 파악’이라도 제시하고자 할 경우 문제는 어떻게 될까? 누군가 안중근의 의도는 좋았지만 테러행위는 옳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때 작동하는 것은 ‘관찰하는 시선’이 된다. 또한,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속에 나라를 빼앗긴 안중근이라는 청년이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것은 정당하다고 한다면, 그때 작동하는 것도 역시 ‘관찰하는 시선’이 된다.


관찰하는 시선과 실존적으로 보는 시선은 다르다. 며칠간의 병영체험은 실제 군 복무와 엄연히 다르고, 축구에서 선수의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관객인 내가 참여할 수 없는 것처럼, 병영체험자와 군인, 놀이하는 사람과 구경꾼은 서로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없다. 안중근의 행위도 이러한 시점에서 다른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관찰자 관점은 대부분의 문제에서 당사자보다 훨씬 광범위한 층을 형성하기 마련이고, 이들의 관점은 안중근 사건에 대하여 뻔한 평가를 내리기 쉽다. “아무리 정당한 주장이더라도 폭력은 안 된다”는 일반화되기 쉬운 견해가 등장하고, 이러한 주장은 식민지 나라의 어느 청년이 ‘테러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사실과 별 관계가 없다. 제3자 입장으로 볼 때 더 객관적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해 본다면 그러한 판단은, 객관적 진리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또 다른 테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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