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9.03.03 16:14

욕 - 도종환 (137)

조회 수 6094 추천 수 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모악산 금산사는 템플스테이로도 유명합니다. 종교가 다른 이들이나 외국인들도 금산사의 절 체험에 많이 참여합니다. 일주일간의 참선을 끝내고 돌아가는 날이었습니다. 한 남자가 템플스테이를 주관하시는 일감 스님에게 인사를 하며 "스님, 저 이혼하기로 결심했습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아내가 자기에게 욕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그 남자는 말했습니다.

스님은 그 말을 듣고 "야 이 나쁜 놈아"하고 욕을 퍼부었습니다.
갑자기 반말로 욕을 해대는 스님을 보며 남자는 "아니 스님 왜 욕을 하십니까?" 하고 어이없어 하는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스님은 "나는 한 번 욕을 했지만 너는 일주일 내내 백번도 더 욕을 했잖아."하고 소리치셨습니다. 참선을 한다고 절방에 앉아서 일주일 내내 아내를 미워하고 속으로 욕하고 그것이 결국 헤어져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스님은 생각하신 거겠죠.

"너 같이 모자란 놈에게 네 아내가 십 년 동안 한번밖에 욕을 안했다면 네 아내는 참으로 착한 여자야."

스님의 욕설을 듣고 있던 그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엎드려 세 번 절하고 산문을 내려갔습니다.

스님은 그 남자도 착한 남자라고 하셨습니다. 스님의 꾸지람과 호통 소리에 눈물을 흘리고 절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스님은 참선이란 자기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도를 깨닫는 것도 결국 자기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직시하게 되는 것이라는 겁니다. 살면서 가장 절실하게 고민하는 것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 그게 깨닫는 것이라는 거지요.

상대방에게서 느끼는 실망스러운 감정은 바로 자신 속에 오래전부터 있어온 것이라고 합니다. 남편은 화를 내거나 아내를 욕하지 않았는데 아내가 자기에게 어떻게 욕을 할 수 있느냐고 생각했지만, 욕설과 분노는 남자의 마음속에 있던 것이라는 겁니다.

일주일을 선방에 앉아 있으면서도 내가 왜 이렇게 괴로워하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 욕을 해서라도 깨닫게 해 주는 스님이 곁에 계신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도종환 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2576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1468
2619 아침의 기적 바람의종 2009.03.01 5134
2618 저녁의 황사 - 도종환 (134) 바람의종 2009.03.01 10475
2617 새 - 도종환 (135) 바람의종 2009.03.01 6015
2616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땠습니까 - 도종환 (136) 바람의종 2009.03.01 6643
» 욕 - 도종환 (137) 바람의종 2009.03.03 6094
2614 꿈의 징검다리 바람의종 2009.03.03 5083
2613 라일락 향기 바람의종 2009.03.03 6642
2612 봄은 먼데서 옵니다. - 도종환 (138) 바람의종 2009.03.08 7263
2611 봄은 낮은 데서 옵니다. - 도종환 (139) 바람의종 2009.03.08 5416
2610 봄은 소리 없이 옵니다. - 도종환 (140) 바람의종 2009.03.14 6493
2609 봄은 차례차례 옵니다 - 도종환 (141) 바람의종 2009.03.14 6175
2608 봄은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 도종환 (142) 바람의종 2009.03.14 4992
2607 그래도 사랑하라 바람의종 2009.03.14 5020
2606 통찰력 바람의종 2009.03.14 7146
2605 마음의 평화 바람의종 2009.03.14 4378
2604 비교 바람의종 2009.03.14 4500
2603 없는 돈을 털어서 책을 사라 바람의종 2009.03.14 4344
2602 정신적 지주 바람의종 2009.03.14 6235
2601 '사랑한다' 바람의종 2009.03.14 6137
2600 잘 살아라. 그것이 최고의 복수다 바람의종 2009.03.14 6916
2599 책이 제일이다 바람의종 2009.03.16 6533
2598 꽃은 소리 없이 핍니다 - 도종환 (143) 바람의종 2009.03.16 5957
2597 대팻날을 갈아라 바람의종 2009.03.17 3530
2596 그대도 나처럼 바람의종 2009.03.18 5061
2595 민들레 뿌리 - 도종환 (144) 바람의종 2009.03.18 745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 121 Next
/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