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01 14:01
새 - 도종환 (135)
조회 수 6010 추천 수 10 댓글 0
고고한 몸짓으로 날아가던 새들이 물가 진흙탕에 내려 물고기를 잡아먹는 걸 볼 때가 있습니다. 비린 물고기로 허기를 채우기 위해 그 우아하던 날개에 온통 진흙칠을 하고 있는 다리 긴 새들. 꽉 다문 조개의 입을 벌리기 위해 부리로 여기저기 두드리거나 들었다 놓는 동안 깃털과 입가에 온통 흙물을 묻힌 채 분주하게 움직이는 새들. 점점 더러워지는 물가, 줄어드는 먹이, 그래도 먼 길을 가기 위해선 뻘흙을 파지 않으면 안 되는 새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먹이를 찾는 그 새들의 처절한 모습을 유심히 들여다보다 다른 생각이 듭니다. '소름끼치는 털투성이 벌레를 잡아먹어 가면서도 저 새들은 저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구나. 온 몸에 흙칠을 해가면서도 저 새들은 다시 하늘로 날아가는구나. 제 하늘 제 갈 길을 찾아 가는구나. 저렇게 하면서 제 소리 제 하늘을 잃지 않고 지켜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름다운 새들이라고 이슬만 마시거나 귀한 나무열매만을 먹으며 고고하게 사는 게 아니라 처절하게 사는구나. 그들의 그런 처절함을 보지 않고 우리는 멀리 떨어져 바라보며 그저 편한 생각, 인간 위주의 한가한 생각만을 해 왔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사실은 사람도 짐승도 다 그렇게 사는 게 아닙니까? 생존에 대해서는 누구나 그런 뜨거운 면이 있으면서 그걸 못 본 체 안 본 체 외면하며 사는 때는 없는지요.
물론 제 한 목숨 지탱하는 일만을 위해 약한 자를 짓밟고 착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생존의 최고 가치는 약육강식일 뿐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탐욕스러움만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짐승이 있습니다. 그러나 있는 힘을 다해 먹이를 찾고 그 힘으로 다시 아름다운 소리를 숲에 되돌려 주는 새처럼, 힘찬 날갯짓으로 하늘에 가득한 새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땀 흘려 일하고 그 건강한 팔뚝으로 인간다움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은 아름답습니다. 성실히 최선을 다해 일하고 나서도 제 빛깔 제 향기를 지니는 사람은 훌륭하게 보입니다. 궂은 일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고 고생스럽게 일하면서도 자상한 엄마와 따뜻한 아빠로 돌아와 있는 이들의 모습은 존경스럽습니다. 거기에 여유와 나눔과 음악 한 소절이 깃들어 있는 것을 상상해 보는 일은 상상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습니다.
그래서 오늘 똑같은 그 새들이 다르게 보입니다. 아니 똑같은 그 새들을 다르게 봅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 風文 | 2023.02.04 | 2551 |
공지 | 친구야 너는 아니 1 | 風文 | 2015.08.20 | 91468 |
2619 | 아침의 기적 | 바람의종 | 2009.03.01 | 5132 |
2618 | 저녁의 황사 - 도종환 (134) | 바람의종 | 2009.03.01 | 10469 |
» | 새 - 도종환 (135) | 바람의종 | 2009.03.01 | 6010 |
2616 |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땠습니까 - 도종환 (136) | 바람의종 | 2009.03.01 | 6642 |
2615 | 욕 - 도종환 (137) | 바람의종 | 2009.03.03 | 6091 |
2614 | 꿈의 징검다리 | 바람의종 | 2009.03.03 | 5082 |
2613 | 라일락 향기 | 바람의종 | 2009.03.03 | 6639 |
2612 | 봄은 먼데서 옵니다. - 도종환 (138) | 바람의종 | 2009.03.08 | 7254 |
2611 | 봄은 낮은 데서 옵니다. - 도종환 (139) | 바람의종 | 2009.03.08 | 5409 |
2610 | 봄은 소리 없이 옵니다. - 도종환 (140) | 바람의종 | 2009.03.14 | 6490 |
2609 | 봄은 차례차례 옵니다 - 도종환 (141) | 바람의종 | 2009.03.14 | 6172 |
2608 | 봄은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 도종환 (142) | 바람의종 | 2009.03.14 | 4986 |
2607 | 그래도 사랑하라 | 바람의종 | 2009.03.14 | 5020 |
2606 | 통찰력 | 바람의종 | 2009.03.14 | 7142 |
2605 | 마음의 평화 | 바람의종 | 2009.03.14 | 4376 |
2604 | 비교 | 바람의종 | 2009.03.14 | 4499 |
2603 | 없는 돈을 털어서 책을 사라 | 바람의종 | 2009.03.14 | 4344 |
2602 | 정신적 지주 | 바람의종 | 2009.03.14 | 6235 |
2601 | '사랑한다' | 바람의종 | 2009.03.14 | 6134 |
2600 | 잘 살아라. 그것이 최고의 복수다 | 바람의종 | 2009.03.14 | 6916 |
2599 | 책이 제일이다 | 바람의종 | 2009.03.16 | 6533 |
2598 | 꽃은 소리 없이 핍니다 - 도종환 (143) | 바람의종 | 2009.03.16 | 5957 |
2597 | 대팻날을 갈아라 | 바람의종 | 2009.03.17 | 3530 |
2596 | 그대도 나처럼 | 바람의종 | 2009.03.18 | 5056 |
2595 | 민들레 뿌리 - 도종환 (144) | 바람의종 | 2009.03.18 | 74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