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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는 원칙과 삶의 원칙


황룡사탑 이후 우리 민족의 건축술과 오늘의 기술이 조화를 이룬 대작이라고 하는 보탑사 목탑을 만든 신영훈 선생은 목탑의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룬 곳 중의 하나로 처마를 듭니다.

"보탑사 탑 처마는 1, 2, 3층이 중첩되고 있는 장중한 아름다움을 보인다. 가볍지 않은 중압감으로 무게를 느끼게 하면서도 날렵하게 처리된 선에서 비상하는 능동감이 감지된다. 처마는 정적이지 않고 하늘을 향해 날개짓하는 생동감이 넘친다."

이렇게 자평합니다. 처마 곡선은 서까래라는 점과 점을 평고대라는 궤적이 선을 이루면서 완성한 결과로 얻어진다고 합니다. 이 선의 유연성을 위해 통서까래도 궤적의 위치에 다라 서로 다른 각도로 치목됩니다. 중국 일본에서는 이 기술이 발달하지 못하여 처마를 수평선으로 형성하는 단순한 직선의 수준에서 만족한다고 합니다. 서양식 안목으로 좌우로 들린 처마곡선을 1차원의 선이라 부른다면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또 하나의 곡선의 존재를 가지고 있어 2차원의 입면이라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선입니다.

신영훈 선생의 글을 읽으며 곧게 다듬은 목재를 가지고 만들어 내는 이 유연성, 장중한 아름다움과 화려한 생동감, 가볍지 않은 무게와 비상하는 능동감 이런 우리 건축 기술에 찬탄을 금치 못합니다. 그러나 더욱 놀라는 것은 처마든, 심초석 놓을 자리를 잡을 때든, 상륜부를 완성할 때든, 고심하고 또 고심하며 항상 최선의 선택이란 생각이 들기 전까지는 함부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못 하나 박지 않고 목탑을 쌓아 올리며,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고 기초를 다지며, 용접을 하지 않고 상륜부 쇠막대를 끼워 올리며 최고의 목탑을 만들었습니다. 쉽게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탑 하나를 만들어도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고집스럽게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천 년 이상을 가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재료에 있어서 훨씬 더 강하다고 하는 철근과 시멘트와 철제빔을 사용한 현대 건축물들이 수 십 년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거나 헐고 다시 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데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건축물 자체로서도 볼품이 없고 내구성도 강하지 못한 집들을 짓고 살아 왔습니다.

삶도 그랬고 역사도 그랬습니다. 어려우면 타협하고 불리하면 잔꾀를 부렸습니다. 이익과 불이익을 수없이 재면서 행동했고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원칙과 근본을 버렸습니다. 목적을 이루고 나면 바르지 않았던 과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온갖 수사를 동원했고 그럴싸한 변명으로 합리화했습니다. 이익을 따라 수없이 모이고 흩어지는 일을 되풀이 해 왔으나 솔직하게 뉘우치거나 반성하는 사람은 볼 수 없었습니다. 가볍게 처신하고 비굴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늘어났으며 깊이 있는 행동을 하는 존경할 만한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어 갔습니다. 장인정신도 선비정신도 자꾸 옛말이 되어 가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새해를 맞으며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잡보장경>을 읽습니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 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삶이니라.

교만하지 않으면서도 당당한 삶, 비굴하지 않으면서도 겸손한 삶, 역경이 닥쳤을 때든 그것을 극복했을 때든 늘 평상심으로 살아가는 삶, 유연하되 원칙을 잃지 않는 삶, 어려울 때마다 근본으로 돌아가 거기서 다시 시작하는 삶, 올해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원합니다.



/도종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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