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5487 추천 수 1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따뜻한 상징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데 어깨가 시려옵니다. 창문 쪽에서 한기가 한 호흡씩 밀려오는 게 보입니다. 커튼을 쳤지만 그것만으로 냉기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밤이 깊어지면서 기온이 점점 내려가고 있는 게 방안에서도 느껴집니다. 난로에 불을 피울까 하다가 오늘은 이대로 견뎌보자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큰 추위가 몰려올 걸 생각하니 땔나무를 좀 아껴야겠습니다. 오늘 같은 겨울밤, 시린 어깨를 모포로 감싸며 견뎌야 할 시련의 날들에 대해 생각하며 깊게 잠들지 못하는 이들이 있을 겁니다.

어떤 밤에 혼자 깨어 있다 보면 이 땅의 사람들이 지금 따뜻하게 그것보다는, 그들이 그리워하는 따뜻하게 그것만큼씩 춥게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눈물겨워지는지 모르겠다 조금씩 발이 시리기 때문에 깊게 잠들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눈물겨워지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꿈에도 소름이 조금씩 돋고 있는 것이 보이고 추운 혈관들도 보이고 그들의 부엌 항아리 속에서는 길어다 놓은 이 땅의 물들이 조금씩 살얼음이 잡히고 있는 것이 보인다 요즈음 추위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요즈음 추위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들의 문전마다 쌀 두어 됫박쯤씩 말없이 남몰래 팔아다 놓으면서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싶다 그렇게 밤을 건너가고 싶다 가장 따뜻한 상징, 하이얀 쌀 두어 됫박이 우리에겐 아직도 가장 따뜻한 상징이다

정진규 시인도「따뜻한 상징」이란 시에서 춥게 잠들어 있는 사람을 생각하며 이렇게 눈물겨워 합니다. 발이 시려서 깊게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래서 "그들의 꿈에도 소름이 조금씩 돋고 있는 것이 보이고 추운 혈관들도 보이"는 것 같다고 합니다. "부엌 항아리 속에서는 길어다 놓은 이 땅의 물들이 조금씩 살얼음이 잡히고 있는" 겨울밤 "그들의 문전마다 쌀 두어 됫박쯤씩 말없이 남몰래 팔아다 놓으면서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싶다" 고 합니다.


















 


나도 춥고 배고프던 소년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친구들이 집집마다 쌀 두어 됫박씩 걷어 마루에 놓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마루에 놓여 있던 하이얀 쌀자루를 생각합니다. 내게 그 쌀자루는 언제나 따뜻한 상징입니다. "요즈음 추위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우리에겐 오늘도 역시 따뜻한 상징이 필요합니다. 그 상징은 진정으로 아픔을 나누려는 따뜻한 마음이 만들어 내는 상징입니다.

/도종환 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6459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5558
2702 살아 있음을 보여 주세요 風文 2020.05.03 497
2701 내 옆에 천국이 있다 風文 2019.06.19 498
2700 선택의 기로 風文 2020.05.14 498
2699 아이들이 번쩍 깨달은 것 風文 2022.01.28 498
2698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風文 2023.08.24 498
2697 나를 버린 친모를 생각하며 風文 2023.02.16 499
2696 그냥 느껴라 風文 2019.08.21 500
2695 이루지 못한 꿈 風文 2020.05.02 500
2694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없다., 요청한들 잃을 것이 없다 風文 2022.09.10 500
2693 한마음, 한느낌 風文 2023.01.21 500
2692 오기 비슷한 힘 風文 2023.06.19 500
2691 한 송이 사람 꽃 風文 2023.11.22 500
2690 밥 하는 것도 수행이다 風文 2019.06.21 501
2689 편안한 쉼이 필요한 이유 1 風文 2023.01.20 501
2688 문병객의 에티켓 風文 2023.01.09 502
2687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2.그리스의 조소미술과 도자기 風文 2023.04.19 502
2686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다' 風文 2022.05.18 503
2685 탐험가들의 철저한 준비 風文 2023.03.10 503
2684 무화과 속의 '작은 꽃들' 風文 2023.06.13 503
2683 요청에도 정도가 있다 風文 2022.09.24 504
2682 따뜻한 맛! 風文 2022.12.16 504
2681 위대한 인생 승리자 風文 2023.11.14 505
2680 마음마저 전염되면... 風文 2019.08.07 506
2679 급체 風文 2019.08.07 507
2678 '관계의 적정 거리' 風文 2019.08.27 50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