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26 12:59
십일월의 나무 - 도종환 (99)
조회 수 6228 추천 수 14 댓글 0
비탈에 선 나무들은 스산하다
그러나 잃을 것 다 잃고
버릴 것 다 버린 나무들이
맨몸으로 허공에 그리는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건 이 무렵이다
거기다 철 이른 눈이라도 내려
허리 휘어진 나무들의 모습은 숙연하다
이제 거둘 건 겨자씨만큼도 없고
오직 견딜 일만 남았는데
사방팔방 수묵화 아닌 곳 없는 건 이 때다
알몸으로 맞서는 처절한 날들의 시작이
서늘하고 탁 트인 그림이 되는 건
십일월 하순, 이맘때쯤이면 잎이란 잎은 다 집니다. 나뭇잎을 다 잃고 비탈에 선 나무들도 우리도 마음 스산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나 산 아래 앉아 바라보면 비탈과 능선에 선 나무들이 이때 오히려 더 아름답습니다. 잎이 다 지고나면 나무들은 알몸의 빈 가지만 남게 되는데 그 세세한 잔가지들이 능선을 따라 이어지며 그리는 그림이 그야말로 한 폭의 풍경화입니다. 아니 "사방팔방 수묵화 아닌 곳 없"습니다.
이제 겨울이 오고 찬바람 불고 눈발이 몰아칠 터인데, 알몸으로 맞서야 하는 처절한 날들만이 남았는데 그 모습이 그림입니다. 가진 것 다 잃고 오직 견딜 일만 남았는데도 그것이 탁 트인 그림이 되는 십일월 하순의 풍경을 보며 인생의 깨달음 하나를 얻습니다. 우리의 처절한 삶을 어떻게 아름다운 그림으로 바꾸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 風文 | 2023.02.04 | 4057 |
공지 | 친구야 너는 아니 1 | 風文 | 2015.08.20 | 92967 |
2727 | 기품 | 바람의종 | 2008.11.26 | 8415 |
2726 | 카지노자본주의 - 도종환 (98) | 바람의종 | 2008.11.26 | 6658 |
» | 십일월의 나무 - 도종환 (99) | 바람의종 | 2008.11.26 | 6228 |
2724 | 손을 잡아주세요 | 바람의종 | 2008.11.27 | 4772 |
2723 | 에너지 언어 | 바람의종 | 2008.11.28 | 6766 |
2722 | 벽을 허물자 | 바람의종 | 2008.11.29 | 8081 |
2721 | 그대 거기 있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1) - 도종환 (100) | 바람의종 | 2008.11.29 | 6107 |
2720 | 그대 거기 있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2) - 도종환 | 바람의종 | 2008.12.06 | 6281 |
2719 | 오송회 사건과 보편적 정의 - 도종환 (102) | 바람의종 | 2008.12.06 | 7133 |
2718 | 겨울기도 - 도종환 (103) | 바람의종 | 2008.12.06 | 6505 |
2717 | 얼마만의 휴식이던가? | 바람의종 | 2008.12.06 | 5611 |
2716 | 내면의 어린아이 | 바람의종 | 2008.12.06 | 5776 |
2715 | 창조적인 삶 | 바람의종 | 2008.12.06 | 6332 |
2714 | 사랑할수록 | 바람의종 | 2008.12.06 | 7756 |
2713 | 인생 마라톤 | 바람의종 | 2008.12.06 | 5498 |
2712 | 대수롭지 않은 것의 힘 | 바람의종 | 2008.12.06 | 4488 |
2711 | 배려 | 바람의종 | 2008.12.08 | 5811 |
2710 | 겨울 준비 - 도종환 (104) | 바람의종 | 2008.12.08 | 6500 |
2709 | 응원 | 바람의종 | 2008.12.09 | 6213 |
2708 |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어 | 바람의종 | 2008.12.09 | 4670 |
2707 | 한 해의 마지막 달 - 도종환 (105) | 바람의종 | 2008.12.10 | 5344 |
2706 | 대추 | 바람의종 | 2008.12.10 | 5417 |
2705 | 생긋 웃는 얼굴 | 바람의종 | 2008.12.11 | 4985 |
2704 | "용기를 잃지 말고 지독하게 싸우십시오!" | 바람의종 | 2008.12.12 | 5899 |
2703 | 4.19를 노래한 시 - 도종환 (106) | 바람의종 | 2008.12.12 | 70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