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8139 추천 수 1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쌍둥이로 사는 일」(시인 길상호)   2009년 7월 14일





 





초등학교 시절 쌍둥이로 자란 우리 형제는 학교에서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었다. 얼굴이 똑같이 닮은 우리들이 주위 사람들에게는 신기하게 보였던 것이다. 같은 얼굴에, 늘 같은 옷을 입고 함께 다니니 그럴 만도 했다. 같은 학년에 여자 쌍둥이 한 쌍이 더 있었지만 그 친구들은 이란성이라 우리만큼 눈길을 끌지는 못했다. 그렇게 구별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우리 형제는 늘 다른 반에 배치되기도 했다. 보통은 시험 성적에 의해 반이 나뉘었지만 우리는 늘 예외였던 것이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주변의 쌍둥이에 대한 관심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후배 중에 또 다른 한 쌍의 일란성 쌍둥이가 들어오면서 쌍둥이에 대한 신비감(?)도 반감되었던 것이다. 오히려 우리 말고도 똑같이 생긴 사람이 또 있구나 싶어, 쌍둥이들끼리 더 신기해했다. 관심은 줄어들었지만 쌍둥이를 같은 반에 배치하지 않는다는 학교 원칙은 중학교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방과 후 청소 시간의 일이다. 종례가 늦어져 우리 반만 늦게까지 청소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복도 청소를 맡은 나는 열심히 바닥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 시간이 한 시간 간격이었기 때문에 앞 시간의 버스를 타려면 빨리 끝내야만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청소를 하고 있는데 복도 끝에서 학생주임 선생님께서 긴 막대 하나를 들고 걸어오시는 게 보였다. 평소 인자하시기로 소문난 분인데 그 날의 얼굴 표정은 확연히 달랐다.


 


'어떤 놈인지 오늘 크게 걸렸구나. 그나저나 단체기합 받게 되면 안 되는데.'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하던 청소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의 발소리는 내 앞에서 멈췄다. 고개를 드는 순간 선생님은 내 귀를 사정없이 잡아당기시더니 당장 교무실로 따라오라고 하셨다. 하루 일과를 천천히 떠올려 봐도 잘못한 것은 없었다. 평소 조용하기만 하던 내가 끌려가자 친구들도 다들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 날따라 교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주임 선생님은 교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종아리를 걷으라 하시더니 들고 있던 막대로 매를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종아리가 붉어지도록 매를 맞았다. 막대를 내려놓은 선생님께서는 그때서야 입을 여셨다.


 


"학생이면 학생답게 행동해야지. 어디 담임 선생님한테 대들어! 그렇지 않아도 너희 선생님 이제 갓 오셔서 적응하기도 힘드실 텐데."


 


"선생님, 전 그 반 아닌데요. 동생하고 착각하셨던 모양인데요."


 


그럼 그렇지! 나는 그때서야 선생님의 화난 이유를 알아차렸다. 전날 동생이 선생님과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친구로부터 들어 알고 있던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내 이야기를 듣고는 굉장히 난감한 얼굴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셨다. 그리고 집에 가서 동생한테 따끔하게 한마디 해주라고 이르시고는 나를 돌려보냈다.


 


그런데 그것으로 사건이 끝난 게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쉬는 시간 복도에서 마주친 주임 선생님은 내 머리를 툭 치면서 화를 내셨다.


 


"어제 네놈 때문에 형 맞은 거 알아?"


 


아, 닮은 것도 죄라면 어쩌겠는가? 나는 선생님께 조용히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 제가 어제 맞았던 그놈인데요."


 


선생님의 당황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억울한 마음은 금세 사라지고 피식, 웃음만 났다.






















■ 필자 소개


 




길상호(시인)


1973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한남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모르는 척』이 있다. 현대시 동인상과 이육사문학상 신인상, 천상병 시상을 수상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6912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6025
2727 「광진이 형」(시인 김두안) 바람의종 2009.07.06 7851
2726 「그 모자(母子)가 사는 법」(소설가 한창훈) 바람의종 2009.05.28 6075
2725 「그 부자(父子)가 사는 법」(소설가 한창훈) 바람의종 2009.05.20 8080
2724 「그녀 생애 단 한 번」(소설가 정미경) 바람의종 2009.06.09 10079
2723 「긴장되고 웃음이 있고 재미있으며 좀 가려운」(소설가 성석제) 바람의종 2009.05.12 7736
2722 「내 말이 그렇게 어려운가요」(시인 조용미) 바람의종 2009.07.10 7834
2721 「내 이름은 이기분」(소설가 김종광) 바람의종 2009.06.09 8433
2720 「누구였을까」(소설가 한창훈) 바람의종 2009.06.12 5254
2719 「니들이 고생이 많다」(소설가 김이은) 바람의종 2009.07.29 7520
2718 「똥개의 노래」(소설가 김종광) 바람의종 2009.06.09 6573
2717 「만두 이야기_1」(시인 최치언) 바람의종 2009.07.09 6978
2716 「만두 이야기_2」(시인 최치언) 바람의종 2009.07.10 6503
2715 「미소를 600개나」(시인 천양희) 바람의종 2009.06.23 6155
2714 「바람에 날리는 남자의 마음」(소설가 성석제) 바람의종 2009.05.15 9281
2713 「밥 먹고 바다 보면 되지」(시인 권현형) 바람의종 2009.06.25 8673
2712 「부모님께 큰절 하고」(소설가 정미경) 바람의종 2009.06.10 6600
2711 「비명 소리」(시인 길상호) 바람의종 2009.07.15 7498
2710 「사랑은 아무나 하나」(시인 이상섭) 바람의종 2009.08.11 7863
2709 「성인용품점 도둑사건」(시인 신정민) 바람의종 2009.07.17 9082
2708 「세상에 없는 범죄학 강의」(시인 최치언) 바람의종 2009.07.08 7619
2707 「스페인 유모어」(시인 민용태) 바람의종 2009.06.09 7901
2706 「신부(神父)님의 뒷담화」(시인 유종인) 바람의종 2009.08.01 6243
» 「쌍둥이로 사는 일」(시인 길상호) 바람의종 2009.07.14 8139
2704 「엉뚱스러운 문학교실」(시인 김종태) 바람의종 2009.07.06 7781
2703 「연변 처녀」(소설가 김도연) 바람의종 2009.06.26 742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