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5290 추천 수 1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불은 나무에서 생겨 나무를 불사른다


 불은 나무에서 생겨나 도리어 나무를 불사른다(火從木出還燒木)는 말이 있습니다. 『직지심체요절』에 나오는 고승대덕의 말입니다. 사람들은 처음에 나무에 막대를 비벼 불을 얻었습니다. 나무에서 불을 얻었으니 그 불이 꺼지지 않도록 다른 나무들을 꺾어다 계속 불에 얹었고 그 불로 몸을 덥히고 먹을 것을 만들었습니다. 나무의 처지에서 보면 나무에서 불이 생겼으나 그 불 때문에 모든 나무들이 땔감이 되고 수없이 불태워지게 된 것입니다.
  녹은 쇠에서 생겨나 쇠를 갉아 먹습니다. 쇠로 만들어진 것은 비길 데 없이 단단하지만 쇠를 못 쓰게 만들고 마는 것은 결국 쇠 자신에게서 생겨납니다. 쇠로 만든 연모는 모든 것을 베고 쓰러뜨리고 갈아엎지만 그 자신은 정작 그의 내부에서 생긴 녹으로 스러지고 맙니다.
  
  내 몸을 무너뜨리는 것도 결국은 내 자신의 내부에서 움틉니다. 외부의 자극과 시련에는 꿈쩍도 않고 버티며 살아가다가도 내부에서 나를 녹슬게 만드는 것들로 끝내는 무너지고 맙니다.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언제나 나의 내부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좋아서 시작합니다. 그 일을 하며 기뻐하고 삶의 기쁨과 보람도 거기서 느꼈는데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로 결국은 괴로워하고 번뇌하는 때가 옵니다. 사람마다 자신의 몸에 자신 있어 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몸에서 가장 자신 있어 하고 자랑스러워하던 부분이 나이 들면 제일 먼저 고장 나고 병들게 됩니다.
  
  사슴이 노루가 다른 짐승보다 더 멋있어 보이는 것은 화려하고 아름다움 뿔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슴도 그렇게 크고 멋진 관을 머리에 쓰고 있는 것이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맹수가 나타나 도망을 가야 할 때 넝쿨과 나뭇가지에 가장 걸리기 쉬운 것 또한 그 뿔입니다. 사슴은 알고 있을까요, 사냥꾼들이 그 뿔 때문에 추적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명예를 얻고자 갖은 고초를 다 겪지만 명예를 얻고 나면 그 명예 때문에 늘 가파른 벼랑 끝에 서 있어야 합니다. 권력을 얻고자 뼈가 부스러지고 살이 짓뭉개지도록 고생을 하면서도 참지만 권력을 지키는 과정도 역시 뼈를 깎고 살이 타들어가는 듯한 삶이어서 제 살과 남의 살로 깎아 만든 권력의 산꼭대기에서 외줄을 타듯 살아가야 합니다.
  
  살아가는 데 돈이 가장 전지전능한 물건인 것 같아서 돈을 벌기 위해 발버둥치다 돈 때문에 군데군데 벌겋게 녹이 슬어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 씁쓸해지는 날이 있습니다. 사랑의 따뜻한 온기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사랑의 불길이 제 몸을 태우고 사랑하던 사람의 삶도 다 태워 결국 재밖에 남기지 않는다는 걸 사람들은 겪어서 압니다. 그러나 또 자신을 태우는 일을 반복하게 되는 게 사람입니다. 저를 태우는 것이 늘 저에게서 비롯되고 저를 녹슬게 하는 것이 저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걸 알고도 같은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고는 인생을 고통의 바다라고 부릅니다. 그 바다는 누가 만들고 있는지요.










   
 
  도종환/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1949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1374
2756 뿌리 깊은 사랑 風文 2023.01.18 519
2755 '억울하다'라는 말 風文 2023.01.17 621
2754 나를 넘어서는 도전 정신 風文 2023.01.14 744
2753 눈에는 눈 風文 2023.01.13 503
2752 외로움을 덜기 위해서 風文 2023.01.13 623
2751 도를 가까이하면 이름 절로 떨쳐지니 風文 2023.01.11 678
2750 마음의 주인 - 법정 風文 2023.01.11 859
2749 내면의 거울 風文 2023.01.11 588
2748 6개월 입양아와 다섯 살 입양아 風文 2023.01.10 633
2747 문병객의 에티켓 風文 2023.01.09 754
2746 그저 꾸준히 노력해 가되 風文 2023.01.08 588
2745 명상 등불 風文 2023.01.07 574
2744 쉰다는 것 風文 2023.01.05 636
2743 튼튼한 사람, 힘없는 사람 風文 2023.01.04 692
2742 버섯이 되자 風文 2023.01.03 662
2741 새로운 도약 風文 2023.01.02 503
2740 지혜의 눈 風文 2022.12.31 668
2739 세월은 가고 사랑도 간다 風文 2022.12.30 528
2738 나쁜 것들과 함께 살 수는 없다 風文 2022.12.29 565
2737 갱년기 찬가 風文 2022.12.28 688
2736 분노와 원망 風文 2022.12.27 488
2735 명인이 명인을 만든다 風文 2022.12.26 692
2734 실수의 순기능 風文 2022.12.24 648
2733 수치심 風文 2022.12.23 585
2732 걸음마 風文 2022.12.22 67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