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8757 추천 수 1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해방 후에 쓰여진 많은 시 중에서 해방직후의 현실과 복잡한 심리 상태를 가장 집약적으로 잘 표현한 시를 꼽으라면 오장환 시인의 「병든 서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8월 15일 밤에 나는 병원에서 울었다. / 너희들은 다 같은 기쁨에 / 내가 운 줄 알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 일본 천황의 방송도, / 기쁨에 넘치는 소문도, / 내게는 곧이가 들리지 않았다. (.....) // 그러나 하루아침 자고 깨니 / 이것은 너무나 가슴을 터치는 사실이었다. / 기쁘다는 말 / 에이 소용도 없는 말이다. / 그저 울면서 두 주먹을 부르쥐고 / 나는 병원에서 뛰쳐나갔다. (.....) // 아, 저마다 손에 손에 깃발을 날리며 / 노래조차 없는 군중이 "만세"로 노래 부르며(.....) / 병든 서울아, 나는 보았다. / 언제나 눈물 없이 지날 수 없는 너의 거리마다 / 오늘은 더욱 짐승보다 더러운 심사에 / 눈깔에 불을 켜들고 날뛰는 장사치와 / 나다니는 사람에게 / 호기 있이 먼지를 씌워주는 무슨 본부, 무슨 본부, / 무슨 당, 무슨 당의 자동차. (.....) / 아름다운 서울, 사랑하는 그리고 정들은 나의 서울아 (.....) 병든 서울, 아름다운,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나의 서울아 / 네 품에 아무리 춤추는 바보와 술 취한 망종이 다시 끓어도 / 나는 또 보았다. / 우리들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을……"
  ---「병든 서울」중에서

  
  해방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이 시의 화자는 몸이 아픈데도 거리로 뛰쳐나갑니다. 거리에 나서면 '싱싱한 사람, 굳건한 청년, 씩씩한 웃음'이 있을 것이라 알고 나갑니다. 그러나 거리에서 '나'는 서울이 병들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조국의 해방을 장사의 대상으로 바꾸는 자본주의적 행태, 속물주의와 한탕주의에 실망합니다. 그리고 분열하는 모습에 실망합니다. 사상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하고 파행으로 치닫는 정치현실, 정치적 허세에 실망합니다.
  
  그러면서 '나'에게 서울은 어떤 의미를 갖는 시ㆍ공간적 장소인가를 이야기합니다. 「병든 서울」안에는 서울을 가리키는 말이 다양하게 변화하며 등장합니다. '병든 서울'은 당시의 서울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심리적으로 느끼는 것은 '다정한 서울'입니다. '아름다운 서울', '사랑하는 서울', '정들은 서울'도 이렇게 느끼고 살고 싶고 사랑해온 서울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미칠 것 같은 서울'은 이런 갈등과 모순이 복잡하게 얽힌 서울이면서 화자의 심리상태가 투영된 서울입니다. '큰물이 지나간 서울'은 해방의 크나큰 사회적 변화가 지나가는 서울을 말하는 것이고, 그 서울의 하늘이 맑게 개이기를 바라는 것은 식민지 압제의 잔재, 제국주의 침략의 잔재와 봉건적 잔재가 사라진 민족의 하늘을 의미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뒤 시 후반부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서울', '사무치는 서울', '자랑스런 서울'은 가장 이상적인 서울의 모습입니다. 물론 서울은 이 나라, 이 땅의 의미까지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 나라"라고 표현한 근대국가의 건설이기도 합니다.
  
  "해방기 현실을 바라보는 창작 주체의 주관적 심경이 이처럼 강렬하게 표출된 시는 드물다."는 평을 받기도 했고 시 부문을 대표해서 <해방기념 조선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합니다. "인민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여, 인민의 힘으로" 새 나라를 건설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던 시인의 꿈은 실현되지 않았고 나라는 분단되고 동족끼리 전쟁을 치른 채 지금까지도 하나 되지 못하고 갈라져 있습니다. 8.15 해방 기념일을 다시 맞는 오늘 우리의 서울은 병든 서울입니까? 아니면 사무치는 서울입니까? 자랑스러운 서울입니까? 부끄러운 서울입니까? 사랑하는 서울입니까? 서로 증오하는 서울입니까? 우리는 어떤 서울을 만들어가야 합니까?










   
 
  도종환/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3887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2849
2748 위대한 당신의 위대한 판단 바람의종 2012.12.21 8898
2747 휴 프레이더의 '나에게 쓰는 편지' 中 - 바람의종 2008.03.10 8853
2746 어떤 이가 내게 정치소설가냐고 물었다 - 이외수 바람의종 2008.12.28 8821
2745 아는 만큼 보인다? 風文 2014.08.06 8821
2744 우기 - 도종환 (48) 바람의종 2008.07.26 8808
2743 국화(Chrysanthemum) 호단 2006.12.19 8807
2742 다다이스트가 되어 보자! 바람의종 2008.08.19 8806
2741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바람의종 2013.01.10 8800
2740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윤안젤로 2013.03.23 8786
2739 자작나무 - 도종환 (127) 바람의종 2009.02.06 8779
2738 내 사랑, 안녕! 風文 2014.08.11 8779
2737 그대는 황제! 風文 2014.12.28 8762
2736 이장님댁 밥통 외등 바람의종 2008.07.04 8760
2735 성숙한 지혜 바람의종 2012.12.10 8759
» 8.15와 '병든 서울' - 도종환 (57) 바람의종 2008.08.19 8757
2733 '애무 호르몬' 바람의종 2011.09.29 8756
2732 창밖의 눈 바람의종 2013.01.25 8744
2731 '느낌' 風文 2014.08.12 8726
2730 문제아 風文 2014.12.08 8722
2729 진흙 속의 진주처럼 바람의종 2008.12.23 8720
2728 경청의 힘! 風文 2014.12.05 8715
2727 결혼 서약 바람의종 2012.10.15 8712
2726 원초적인 생명의 제스처, 문학 바람의종 2008.05.06 8708
2725 다리가 없는 새가 살았다고 한다. 바람의종 2008.04.05 8702
2724 좋은 생각, 나쁜 생각 바람의종 2008.10.22 869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 121 Next
/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