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2.27 01:45

박상우 <말무리반도>

조회 수 9806 추천 수 1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너, 윤곽선이 지워진 세계의 비극이 뭔지 아느냐?

뿌리를 뽑는다는 것.

그래, 잡초를 뽑으며 나는 뿌리를 뽑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십 년, 내 자신이 잡초처럼 척박한 땅에다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으니 손놀림이 모지락스러워지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닐 터였다. 그러니 잡초가 아니라 가슴에 응어리진 자기 혐오를 뽑아 내기 위해 나는 정신없이 땅을 파헤치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 스스로 뿌리를 내렸으나 내 스스로 거두지 못한 끈질긴 비관과 절망의 뿌리, 그것들은 지금 내 영혼의 어느 암층에까지 뻗어나가 있을가. 스물일곱에서 서른일곱 사이. 세월의 수레바퀴에 실려 간 꿈은 이제 아쉬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필요한 것은 적멸이 아니라 소멸, 그리고 또 다른 길을 향한 준비이거나 출발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십 년 세월 저쪽, 꿈과 무관한 길을 떠나던 시절의 기억은 부정이나 타파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것이 원하던 길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그 시절의 나를 부정하고 지금의 나를 인정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원치 않는 길을 에돌아가는 것, 그것을 통해 오히려 강화되거나 견고해질 수 있는게 꿈이라면 지금의 나를 무슨 말로 변명할수 있으랴. 꿈을 위해 꿈을 잠재우는 과정. 세상이 꿈꾸는 자의 것이라는 말은 세상이 결코 꿈꾸는 자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역으로 반영하는 말일 뿐이었다.

"인생이 극도로 불투명하게 느껴질 때가 있죠. 내가 살아온 이유와 살아갈 이유, 그런 것에 아무런 확신도 가질 수 없을 때......그러니까 혼자인 게 당연하고 혼자일 수밖에 없는 시간 같은 거요. 아마 나는 지금 그런 시간을 지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박상우  <말무리반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3382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2385
69 사람, 생명의 노래 바람의종 2008.03.04 6325
68 사랑 바람의종 2008.03.04 6426
67 '사랑 할 땐 별이 되고'중에서... <이해인> 바람의종 2008.03.01 7248
66 김인숙 <거울에 관한 이야기> 바람의종 2008.02.29 11043
65 엄창석,<색칠하는 여자> 바람의종 2008.02.28 11207
» 박상우 <말무리반도> 바람의종 2008.02.27 9806
63 죽음에 대한 불안 두 가지. 바람의종 2008.02.25 6811
62 나의 아버지는 내가... 바람의종 2008.02.24 7149
61 <죽은 시인의 사회> 中 바람의종 2008.02.23 8407
60 테리, 아름다운 마라토너 바람의종 2008.02.22 8631
59 참새와 죄수 바람의종 2008.02.21 9719
58 사랑을 논하기에 앞서.. 바람의종 2008.02.20 5952
57 이성을 유혹하는 향수, 그 실체는? 바람의종 2008.02.19 9704
56 젊은 날의 초상 中 바람의종 2008.02.19 7969
55 닥터 지바고 중 바람의종 2008.02.18 6486
54 안병무 '너는 가능성이다' 中 바람의종 2008.02.17 10553
53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계산된 세계 바람의종 2008.02.16 6492
52 깨기 위한 금기, 긍정을 위한 부정 바람의종 2008.02.15 8551
51 사랑 바람의종 2008.02.15 7638
50 사랑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바람의종 2008.02.14 6740
49 나는 네게 기차표를 선물하고 싶다 바람의종 2008.02.13 7671
48 어머니의 한쪽 눈 바람의종 2008.02.12 6034
47 진실한 사랑 바람의종 2008.02.11 7988
46 하늘에서 코끼리를 선물 받은 연암 박지원 바람의종 2008.02.09 13699
45 사사로움을 담을 수 있는 무한그릇 바람의종 2008.02.03 800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119 120 121 Next
/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