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9.09 03:49

불안 - 도종환 (67)

조회 수 6688 추천 수 1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칸나꽃 빛깔 같던 여름의 열정이 아직도 화단 구석엔 짙기만 한데 벌써 가을바람이 잎새들을 흔듭니다. 세월은 바람처럼 아무것에도 막힘이 없이 흘러갑니다. 계절이 바뀌고 세월 흐르는 것이 이처럼 살갗에 와 닿을 때면 까닭 없이 미래에 대한 불안 같은 것이 솟곤 합니다.
  
  늙음과 병듦과 죽음을 어떻게 피할 수 있습니까? 피어서 시들지 않는 꽃은 없고 지금 살아 있는 모습으로 영원히 죽지 않거나 변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스무 살 무렵에는 서른 살이 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는데, 어느새 사십대에 들어서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예순 살이 되어서 인생의 큰 고비를 넘는구나 생각하며 되돌아보는 나이 오십은 안타깝게 보낸 후회의 나날이었는데, 젊어서 생각하는 나이 오십은 아득한 불안으로 바라보게 되는 나이입니다. 그렇게 살아 보지 않은 나이에 대한 두려움과 살아 온 나날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어지는 게 인생인지도 모릅니다. 늙음과 죽음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공연한 불안함을 갖게 하는 것이 앞날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럴 때면 오늘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라고 불경에서는 가르칩니다. 오늘 나의 삶이 미래의 나의 삶을 결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하루를 사람답게 살고 있는지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땀 흘리며 살고 있는지를 먼저 돌아보라고 합니다. 오늘 하루를 부끄러움 없이 사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내가 곧 미래의 나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내가 어떤 벗과 함께 있는가를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내 마음에 맞는 벗, 그도 나와 함께 떨어질 수 없는 벗의 모습은 지금 내가 사는 모습의 반영이요 그를 보면 나의 현재와 미래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삶이 의롭고 삿되지 않으며 자신감을 가질 만하면 나 또한 내 삶에 믿음을 가져도 좋을 것입니다. 지금 그런 벗들과 함께 있다면 당신의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불경에서는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함께 굳건히 갈 수 있는 벗이 아니라면, 이 가을 지금의 삶을 떠나 그런 진정한 벗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나 또한 그런 벗을 만나기 위해 나 자신을 벼리고 다듬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어리석은 벗과 함께 가고 있다면 당장 혼자서 가기를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숫타니파아타의 비유처럼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혼자 가야 합니다. 그러면 내 외로움 내 당당함에 맞는 새로운 벗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용기가 있다면 오늘 하루의 삶이 불안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가올 하루하루의 삶 역시 불안해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도종환/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6597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5691
227 살아갈 힘이 생깁니다 風文 2022.01.11 455
226 호기심 천국 風文 2022.12.19 455
225 무심하게 구는 손자손녀들 風文 2022.02.08 454
224 바로 말해요, 망설이지 말아요 風文 2022.02.10 454
223 자기 암시를 하라 風文 2022.09.07 454
222 단 하나의 차이 風文 2023.02.18 454
221 아이에게 '최고의 의사'는 누구일까 風文 2023.11.13 454
220 그저 꾸준히 노력해 가되 風文 2023.01.08 452
219 6개월 입양아와 다섯 살 입양아 風文 2023.01.10 451
218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46. 찾고, 구하고, 묻다. 風文 2021.09.08 450
217 1%의 가능성을 굳게 믿은 부부 - 릭 겔리나스 風文 2022.08.29 450
216 실수에 대한 태도 風文 2023.03.08 450
215 목화씨 한 알 風文 2020.05.03 448
214 많은 것들과의 관계 風文 2021.10.31 448
213 경험을 통해 배운 남자 - 하브 에커 風文 2022.09.02 448
212 끈질기게 세상에 요청한 남자 - 안토니 로빈스 風文 2022.09.03 448
211 구조선이 보인다! 風文 2020.05.03 447
210 그녀가 당신을 사랑할 때 風文 2022.02.04 447
209 소년소녀여, 눈부신 바다에 뛰어들라! 風文 2022.05.25 447
208 딱 한 번의 실천이 가져온 행복 - 클로디트 헌터 風文 2022.08.23 447
207 흥미진진한 이야기 風文 2023.07.29 446
206 단골집 風文 2019.06.21 445
205 소리가 화를 낼 때, 소리가 사랑을 할 때 風文 2021.11.10 445
204 '위대한 일'은 따로 없다 風文 2022.02.10 445
203 12. 헤르메스 風文 2023.11.09 44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119 120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