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7900 추천 수 1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정재학


손택수ㆍ시인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비가 오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날도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하늘이 죽어서 조금씩 가루가 떨어지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나는 아직 내 이름조차 제대로 짓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피뢰침 위에는 헐렁한 살 껍데기가 걸려 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암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손톱이 빠지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누군가 나의 성기를 잘라버렸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목에는 칼이 꽂혀서 안 빠지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펄떡거리는 심장을 도려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담벼락의 비가 마르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전기불에 비하면 촛불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전기불은 방 안의 어둠을 단번에 밀어내버리지만, 촛불은 어둠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성격이 어둠을 드러내는 효과를 발휘한다. 완전히 밝지도 완전히 어둡지도 않은, 어둠과 빛이 동시에 공존하는 그 품은 부드럽고 안온하다.

어머니는 그 부드러운 불로 밥을 짓고 있다. 촛불로 밥을 짓는 게 현실적으로 과연 가능한가라고 묻지는 말 일이다. 거리에선 지금 누군가 십자가에 매달리듯 피뢰침에 매달려 끔찍하게 죽어가고 있고, 입을 틀어막기 위해 칼이 목에 꽂혀 있는 끔찍한 지옥도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외면하고 싶은 이 끔찍한 현실을 드러내는 게 촛불이다. 비 속에서도 촛불은 타오르고, 암이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촛불은 타오른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우리 시대에 다시 본다는 것은 참혹한 일이다.

  1. No Image notice by 風文 2023/02/04 by 風文
    Views 6148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2. 친구야 너는 아니

  3. No Image 11Nov
    by 바람의종
    2008/11/11 by 바람의종
    Views 4863 

    놀이

  4. No Image 11Nov
    by 바람의종
    2008/11/11 by 바람의종
    Views 4688 

    도롱뇽의 친구들께

  5. No Image 11Nov
    by 바람의종
    2008/11/11 by 바람의종
    Views 6953 

    아주 낮은 곳에서

  6. No Image 11Nov
    by 바람의종
    2008/11/11 by 바람의종
    Views 6461 

    세상은 아름다운 곳 - 도종환 (91)

  7. No Image 11Nov
    by 바람의종
    2008/11/11 by 바람의종
    Views 6807 

    떨어지는 법 - 도종환 (90)

  8. No Image 11Nov
    by 바람의종
    2008/11/11 by 바람의종
    Views 7112 

    안네 프랑크의 일기 - 도종환 (89)

  9. No Image 11Nov
    by 바람의종
    2008/11/11 by 바람의종
    Views 6460 

    그대의 삶은...

  10. No Image 11Nov
    by 바람의종
    2008/11/11 by 바람의종
    Views 7450 

    "10미터를 더 뛰었다"

  11. No Image 03Nov
    by 바람의종
    2008/11/03 by 바람의종
    Views 7487 

    청소

  12. No Image 01Nov
    by 바람의종
    2008/11/01 by 바람의종
    Views 5940 

    세상사

  13. No Image 31Oct
    by 바람의종
    2008/10/31 by 바람의종
    Views 5902 

    아홉 가지 덕 - 도종환 (88)

  14. No Image 31Oct
    by 바람의종
    2008/10/31 by 바람의종
    Views 7388 

    백만장자로 태어나 거지로 죽다

  15. No Image 30Oct
    by 바람의종
    2008/10/30 by 바람의종
    Views 10232 

    단풍 드는 날 - 도종환 (87)

  16. No Image 30Oct
    by 바람의종
    2008/10/30 by 바람의종
    Views 6005 

    사랑도 뻔한 게 좋다

  17. No Image 30Oct
    by 바람의종
    2008/10/30 by 바람의종
    Views 8408 

    김성희의 페이지 - 가을가뭄

  18. No Image 29Oct
    by 바람의종
    2008/10/29 by 바람의종
    Views 6534 

    은행나무 길 - 도종환 (86)

  19. No Image 29Oct
    by 바람의종
    2008/10/29 by 바람의종
    Views 6031 

    내 몸은 지금 문제가 좀 있다

  20. No Image 29Oct
    by 바람의종
    2008/10/29 by 바람의종
    Views 7703 

    혼자라고 느낄 때

  21. No Image 27Oct
    by 바람의종
    2008/10/27 by 바람의종
    Views 8248 

    헤어졌다 다시 만났을 때

  22. No Image 25Oct
    by 바람의종
    2008/10/25 by 바람의종
    Views 7623 

    멈출 수 없는 이유

  23. No Image 25Oct
    by 바람의종
    2008/10/25 by 바람의종
    Views 8224 

    벌레 먹은 나뭇잎 - 도종환 (85)

  24. No Image 24Oct
    by 바람의종
    2008/10/24 by 바람의종
    Views 5874 

    깊이 바라보기

  25. No Image 23Oct
    by 바람의종
    2008/10/23 by 바람의종
    Views 7900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26. No Image 23Oct
    by 바람의종
    2008/10/23 by 바람의종
    Views 7083 

    눈물 속에 잠이 들고, 기쁜 마음으로 일어났다

  27. No Image 22Oct
    by 바람의종
    2008/10/22 by 바람의종
    Views 5901 

    아무도 가지 않은 길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