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의 집 - 도종환 (95)

by 바람의종 posted Nov 1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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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조카 허친이 집을 짓고서 통곡헌(慟哭軒)이란 이름의 편액을 걸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크게 비웃으며 세상에는 즐길 일이 얼마나 많거늘 무엇 때문에 곡(哭)이란 이름을 내세워 집에 편액을 건단 말이냐 하며 비웃었습니다.
그러자 허친이 이렇게 대꾸하였습니다.

"저는 이 시대가 즐기는 것은 등지고, 세상이 좋아하는 것은 거부합니다. 이 시대가 환락을 즐기므로 저는 비애를 좋아하며, 이 세상이 우쭐대고 기분 내기를 좋아하므로 저는 울적하게 지내렵니다. 세상에서 좋아하는 부귀나 영예를 저는 더러운 물건인 양 버립니다. 세상에서 제일 미워하는 것은 언제나 곡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저는 곡이란 이름을 내세워 제집의 이름을 삼았습니다."

말하자면 시대의 비천함과 세태의 천박함을 보면서 통곡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저항의 마음을 편액에 담아 표현한 것입니다. 잘못된 세상과 불화하며 맞서고자 하는 사연을 듣고 허균은 조카를 비웃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국가의 일은 날이 갈수록 그릇되어 가고, 선비의 행실은 날이 갈수록 허위에 젖어들어가며, 친구들끼리 등을 돌리고 저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배신행위는 길이 갈라져 분리됨보다 훨씬 심하다. 또 현명한 선비들이 곤액(困厄)을 당하는 상황이 막다른 길에 봉착한 처지보다 심하다. 허친이 통곡한다는 이름의 편액을 내건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허균은 타락한 한 시대의 모습이 말세에 가깝다고 비판하며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였습니다. 그런 허균이 "국가의 일은 날이 갈수록 그릇되어 가고" 있는 지금의 정치 사회 상황을 보면 똑같이 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부자들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사회, 가난한 농민들을 등치는 뻔뻔한 행정, 역사를 자기 입맛에 맞게 마음대로 뜯어 고치려는 위험한 발상, 근본을 잊은 채 경쟁의 채찍만을 휘두르는 교육, 약자들에게는 추상같고 부자들에게는 너그럽게 적용되는 법률을 보면서 허균 또한 '통곡의 집'이란 편액을 써서 집집마다 나누어 주고 있을 것 같습니다.



도종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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