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5215 추천 수 1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불은 나무에서 생겨 나무를 불사른다


 불은 나무에서 생겨나 도리어 나무를 불사른다(火從木出還燒木)는 말이 있습니다. 『직지심체요절』에 나오는 고승대덕의 말입니다. 사람들은 처음에 나무에 막대를 비벼 불을 얻었습니다. 나무에서 불을 얻었으니 그 불이 꺼지지 않도록 다른 나무들을 꺾어다 계속 불에 얹었고 그 불로 몸을 덥히고 먹을 것을 만들었습니다. 나무의 처지에서 보면 나무에서 불이 생겼으나 그 불 때문에 모든 나무들이 땔감이 되고 수없이 불태워지게 된 것입니다.
  녹은 쇠에서 생겨나 쇠를 갉아 먹습니다. 쇠로 만들어진 것은 비길 데 없이 단단하지만 쇠를 못 쓰게 만들고 마는 것은 결국 쇠 자신에게서 생겨납니다. 쇠로 만든 연모는 모든 것을 베고 쓰러뜨리고 갈아엎지만 그 자신은 정작 그의 내부에서 생긴 녹으로 스러지고 맙니다.
  
  내 몸을 무너뜨리는 것도 결국은 내 자신의 내부에서 움틉니다. 외부의 자극과 시련에는 꿈쩍도 않고 버티며 살아가다가도 내부에서 나를 녹슬게 만드는 것들로 끝내는 무너지고 맙니다.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언제나 나의 내부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좋아서 시작합니다. 그 일을 하며 기뻐하고 삶의 기쁨과 보람도 거기서 느꼈는데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로 결국은 괴로워하고 번뇌하는 때가 옵니다. 사람마다 자신의 몸에 자신 있어 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몸에서 가장 자신 있어 하고 자랑스러워하던 부분이 나이 들면 제일 먼저 고장 나고 병들게 됩니다.
  
  사슴이 노루가 다른 짐승보다 더 멋있어 보이는 것은 화려하고 아름다움 뿔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슴도 그렇게 크고 멋진 관을 머리에 쓰고 있는 것이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맹수가 나타나 도망을 가야 할 때 넝쿨과 나뭇가지에 가장 걸리기 쉬운 것 또한 그 뿔입니다. 사슴은 알고 있을까요, 사냥꾼들이 그 뿔 때문에 추적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명예를 얻고자 갖은 고초를 다 겪지만 명예를 얻고 나면 그 명예 때문에 늘 가파른 벼랑 끝에 서 있어야 합니다. 권력을 얻고자 뼈가 부스러지고 살이 짓뭉개지도록 고생을 하면서도 참지만 권력을 지키는 과정도 역시 뼈를 깎고 살이 타들어가는 듯한 삶이어서 제 살과 남의 살로 깎아 만든 권력의 산꼭대기에서 외줄을 타듯 살아가야 합니다.
  
  살아가는 데 돈이 가장 전지전능한 물건인 것 같아서 돈을 벌기 위해 발버둥치다 돈 때문에 군데군데 벌겋게 녹이 슬어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 씁쓸해지는 날이 있습니다. 사랑의 따뜻한 온기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사랑의 불길이 제 몸을 태우고 사랑하던 사람의 삶도 다 태워 결국 재밖에 남기지 않는다는 걸 사람들은 겪어서 압니다. 그러나 또 자신을 태우는 일을 반복하게 되는 게 사람입니다. 저를 태우는 것이 늘 저에게서 비롯되고 저를 녹슬게 하는 것이 저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걸 알고도 같은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고는 인생을 고통의 바다라고 부릅니다. 그 바다는 누가 만들고 있는지요.










   
 
  도종환/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5612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4493
302 「그 모자(母子)가 사는 법」(소설가 한창훈) 바람의종 2009.05.28 6045
301 「광진이 형」(시인 김두안) 바람의종 2009.07.06 7836
300 「개업식장이 헷갈려」(시인 이대의) 바람의종 2009.08.03 7764
299 「개는 어떻게 웃을까」(시인 김기택) 바람의종 2009.05.28 10899
298 「2호차 두 번째 입구 옆자리」(시인 차주일) 바람의종 2009.07.06 9201
297 「1997년도라는 해」(시인 김영남) 바람의종 2009.07.29 7873
296 「"에라이..."」(시인 장무령) 바람의종 2009.07.06 7727
295 ‘옵아트’ 앞에서 인간은 천진난만한 아이가 된다! 바람의종 2007.08.15 45979
294 TV에 애인구함 광고를 내보자 바람의종 2008.09.25 9596
293 solomoon 의 잃어버린 사랑을 위하여(17대 대선 특별판) 바람의종 2007.12.20 8090
292 Love is... 風磬 2006.02.05 17736
291 Gustav Klimt and the adagietto of the Mahler 5th symphony 바람의종 2008.03.27 13872
290 GOD 바람의종 2011.08.07 3108
289 AI 챗지피티ChatGPT가 갖지 못한 것 風文 2024.02.08 264
288 <죽은 시인의 사회> 中 바람의종 2008.02.23 8425
287 9. 아테나 風文 2023.10.18 502
286 80세 노교수의 건강 비결 두 가지 風文 2024.03.27 186
285 80대 백발의 할머니 風文 2023.08.28 503
284 8.15와 '병든 서울' - 도종환 (57) 바람의종 2008.08.19 8782
283 8,000미터 히말라야 산 바람의종 2011.11.14 3735
282 6초 포옹 風文 2015.07.30 8143
281 6세에서 9세, 66세에서 99세까지 風文 2013.07.09 10490
280 6개월 입양아와 다섯 살 입양아 風文 2023.01.10 412
279 60조 개의 몸 세포 風文 2023.07.22 425
278 5분 청소 바람의종 2010.10.04 326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