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5254 추천 수 1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누구였을까」(소설가 한창훈)   2009년 6월 11일_서른두번째





 





우리 마을에 초상이 났었다.


장성한 네 딸이 모여 아버지 초상을 쳤다. 딸자식이 많은 집 초상은 유난히 슬프다고 했는데 그 집이 그랬다. 사흘 동안 울음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드디어 발인하는 날. 상여로 옮기기 직전, 집에서 망자의 마지막 식사 시간이었다. 많이 잡수고 가십시오. 네 딸은 고봉으로 담은 제삿밥을 올리고 나서 꿇어앉았다. 함지박만 한 엉덩이를 뒤로 내민 채 짜내는 울음을 쉰 목소리로 이어 갔다. 그리고 그 순간. 뿌우웅. 네 딸 사이에서 적잖은 방귀가 터져나와 버렸다.


줄지어 서 있던 문상객들은 쿡쿡, 웃음 참느라 곤욕을 보는데 정작 괴로운 이는 딸들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있자니 모양새나 상황이 너무 민망했다. 형국 변환 시도로 큰딸이 무작정 몸을 날렸다. 짝, 소리가 나게 방바닥을 치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이게 무슨 소리요. 아부지 가시는 길에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이요.”


이러다가 뒤집어쓰겠구나 싶은 둘째가 언니의 자세를 뒤따르며 외쳤다.


“나는 아니요, 아부지. 나는 아니요.”


그럼 셋째인들 가만 있겠는가.


“이런 경우는 없소. 아부지 가시는 길에 이래서는 안 되는 법이요.”


코너에 밀린 막내까지도 바닥을 치며 악 쓰듯 외쳤다.


“아부지는 아실 것이요, 아부지는 정녕 아실 것이요.”


 


우울했던 초상의 끝이 웃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상여 나가는 내내 여기저기서 웃음 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울음과 웃음이 한장소 같은 시간대에 뒤범벅되어 버린 것이다. 이상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떠나는 자리에 웃음 소리 돋아났다면 그 인생도 괜찮은 인생 아니겠는가.


어쨌든 그렇게 곤란한 상황은 벗어났는데 누가 끼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 필자 소개


 




한창훈(소설가)


1963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가던 새 본다』『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청춘가를 불러요』가 있다. 산문소설 『바다도 가끔은 섬의 그림자를 들여다 본다』와 장편소설『홍합』『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열 여섯의 섬』등이 있다. 동화 『검은섬의 전설』과 공동 산문집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를 펴냈다. 제3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6843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5958
327 「웃는 가난」(시인 천양희) 바람의종 2009.06.18 5850
326 「우리처럼 입원하면 되잖아요」(시인 유홍준) 바람의종 2009.07.17 6813
325 「연변 처녀」(소설가 김도연) 바람의종 2009.06.26 7427
324 「엉뚱스러운 문학교실」(시인 김종태) 바람의종 2009.07.06 7781
323 「쌍둥이로 사는 일」(시인 길상호) 바람의종 2009.07.14 8132
322 「신부(神父)님의 뒷담화」(시인 유종인) 바람의종 2009.08.01 6239
321 「스페인 유모어」(시인 민용태) 바람의종 2009.06.09 7901
320 「세상에 없는 범죄학 강의」(시인 최치언) 바람의종 2009.07.08 7619
319 「성인용품점 도둑사건」(시인 신정민) 바람의종 2009.07.17 9078
318 「사랑은 아무나 하나」(시인 이상섭) 바람의종 2009.08.11 7861
317 「비명 소리」(시인 길상호) 바람의종 2009.07.15 7495
316 「부모님께 큰절 하고」(소설가 정미경) 바람의종 2009.06.10 6600
315 「밥 먹고 바다 보면 되지」(시인 권현형) 바람의종 2009.06.25 8670
314 「바람에 날리는 남자의 마음」(소설가 성석제) 바람의종 2009.05.15 9281
313 「미소를 600개나」(시인 천양희) 바람의종 2009.06.23 6150
312 「만두 이야기_2」(시인 최치언) 바람의종 2009.07.10 6503
311 「만두 이야기_1」(시인 최치언) 바람의종 2009.07.09 6978
310 「똥개의 노래」(소설가 김종광) 바람의종 2009.06.09 6573
309 「니들이 고생이 많다」(소설가 김이은) 바람의종 2009.07.29 7520
» 「누구였을까」(소설가 한창훈) 바람의종 2009.06.12 5254
307 「내 이름은 이기분」(소설가 김종광) 바람의종 2009.06.09 8433
306 「내 말이 그렇게 어려운가요」(시인 조용미) 바람의종 2009.07.10 7826
305 「긴장되고 웃음이 있고 재미있으며 좀 가려운」(소설가 성석제) 바람의종 2009.05.12 7736
304 「그녀 생애 단 한 번」(소설가 정미경) 바람의종 2009.06.09 10079
303 「그 부자(父子)가 사는 법」(소설가 한창훈) 바람의종 2009.05.20 808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