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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아이들 - 도종환 (123)


지난주에 핀란드를 다녀왔습니다. 그래서 일 년 가까이 보내던 엽서를 일주일간 보내지 못했습니다.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여기도 눈이 많이 왔지만 핀란드는 사방이 눈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오후 4시도 되기 전에 날이 어두워지고 밤이 길었습니다. 겨울이면 흐린 날이 많고 눈이 많이 내리는 추운 나라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들은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서 밖에서 재운다고 합니다. 기온이 내려가면 건조해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밖에서 자야 산소를 충분히 마실 수 있다고 해서 밖에서 재운다는 겁니다.

아이가 건강검진을 받고 예방주사를 맞을 때 언제부터 앉기 시작했는지 손으로 물건을 잡기 시작한 건 언제인지 간호사가 일일이 체크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림 보고 말하기, 도형 옮겨 그리기, 공 던지고 받기 구슬꿰기 등의 지적능력도 검사한다고 합니다. 라스텐 네우블라 라는 이름의 이 성장 발달 기록은 조기 교육 을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뒤처지지 않게 하려는 노력의 하나라고 합니다. 핀란드 교육의 목적은 영재를 키우는 데 있지 않고 뒤처지는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배려하고 노력하는 데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참을 수 있는지 없는지,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 없는지, 집중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테스트하는데 그중에서도 집중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도 집중력이 부족하다 싶으면 보충 교육을 통해서 집중력을 다시 기르도록 지도하고, 집에서도 놀면서 집중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한다고 합니다. 레고를 가지고 논다든가 집중해서 놀기 시작하면 아이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부모가 조용히 한다는 겁니다. 밖에서 한두 시간씩 뛰어 놀면서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들어와야 차분해진다고 생각해서 마음껏 놀면서 자라게 한다는 겁니다.

이 나라에는 학원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모든 교육은 학교에서 이루어집니다. 교사와 아이와 부모가 상의해서 어디까지 공부할 것인가를 정하고 그 합의한 목표에 도달했는가를 측정하는 것이 이 나라의 평가입니다. 목표에 도달하면 다음 목표를 정하고 도달하지 못했으면 학습목표를 다시 협의해서 정합니다. 학생마다 목표가 다른 것은 개인별로 학습속도가 다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학습의 원칙 중의 하나가 협력입니다. 공부는 모둠을 만들어 서로 협력하며 배워나갑니다. 친구는 경쟁의 상대가 아니라 협력하는 존재이고 내가 넘어야 할 것은 친구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학생간의 학력 격차가 적고 학교간의 차이가 적습니다. 학생들은 지역의 학교로 진학을 하고 어디서든 무상으로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사는 가장 존경 받는 직업 중의 하나이고 사회에서도 높은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중앙정부는 교육의 가이드라인만을 정하고 교육과정은 학교별로 자율적으로 구성하여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수업의 양은 우리나라의 절반도 안 되는데 학력수준은 세계 1위입니다.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에서 가장 높은 성취를 보여주고 있으며 부패수치는 가장 낮고, 복지에 투자하는 비율이 우리의 두 배 가까이 되며 특권의식이 없는 민족입니다. 우리도 상위권을 유지하는 과목이 있지만 우리와 가르치는 방식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양 많은 수업에 치중하며, 아이들을 휘어잡고 꼼짝 못하게 몰아 부치면서 얻어내는 성적이지만 이 나라는 시험도 별로 보지 않습니다.

이 나라는 어머니가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를 돌보고 바르게 교육시킬 책임이 국가와 자치단체에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이가 서로 도울 줄 알고 소통하고 협력할 줄 알며 지적능력과 함께 상대방을 존중하고 정직하고 민주적인 생각을 가진 젊은이로 자라나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가장 큰 이익이요 재산이라고 이들은 믿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들은 그렇게 교육받고 자라서 작은 나라를 남들이 부러워하는 나라로 만들고 있습니다. 국민소득도 우리의 두 배가 넘습니다.

함께 간 분 중에 이 나라의 어린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이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학대받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우는 그의 눈물이 오래 우리의 가슴을 적셨습니다.



/도종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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