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407 추천 수 2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그래서 봄은 차례차례 옵니다.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의 몸속에 우주의 섭리가 들어 있기 때문에 질서정연하게 옵니다. 우주의 커다란 계획 속에서 차례차례 옵니다. 꽃다지 보다 민들레가 먼저 피는 법이 없습니다. 민들레는 꽃다지가 들판 가득 자기의 날들을 만드는 것을 본 다음에 제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똑같이 노란빛의 꽃이라 해도 산수유 꽃보다 먼저 피는 개나리는 없습니다. 산수유 꽃이 제일 먼저 벌들을 자기 꽃으로 가득 가득 불러들이는 것을 보고도 개나리는 시샘하여 피지 않습니다. 천천히 자기 때가 되어 피어도 자기를 찾아오는 것들은 또 있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자연은 다 예비해 놓고 있을 것임을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할미꽃이 피지 않았는데 가을 구절초가 먼저 와서 피는 법이 없습니다. 이게 우주의 질서입니다. 철쭉이 진달래보다 결코 먼저 오는 법이 없으며 백목련이 다 지고 난 뒤에라야 그 뜨락에 불두화가 피는 것입니다. 화단마다 봄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어도 장미는 팽팽하게 초록 물이 오른 줄기를 담 밑에 걸어 두고 때를 기다립니다. 자기가 피어야 할 철이 언제인가를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압니다.

먼저 피었다고 교만한 꽃이 없으며 나중에 핀다고 초조해 하는 꽃이 없습니다. 제가 피어야 할 차례가 있다고 믿고 있으며, 인간의 세상에 살면서 제가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할 시간이 언제인가를 꽃과 나무들은 알고 있습니다.

때론 그걸 모르고 일찍 피는 꽃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제 차례가 아니었음을 알면 얼른 다시 들어갑니다. 꺼내 놓았던 꽃을 거두어 다시 뿌리로 돌아가 자연스럽게 찾아 올 제 때를 기다립니다. 같은 목련나무 안에서도 꽃피는 순서가 있고 같은 모과나무 줄기에서도 순이 돋는 잎차례가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가 피는데도 다 질서가 있고 차례가 있습니다. 우주만물을 이 땅에 내는 데도 그런 순서와 섭리를 따르는 것을 보면 경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봄도 그렇게 이미 계획해 놓은 순서에 따라 차례차례 오는 것입니다.


/도종환 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2378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1813
435 큰일을 낸다 바람의종 2012.09.11 8131
434 그 꽃 바람의종 2013.01.14 8140
433 인생 나이테 風文 2015.07.26 8140
432 「그 부자(父子)가 사는 법」(소설가 한창훈) 바람의종 2009.05.20 8151
431 왕이시여, 어찌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바람의종 2008.07.09 8152
430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 風文 2015.08.09 8156
429 더 넓은 공간으로 바람의종 2012.11.22 8158
428 가장 작은 소리, 더 작은 소리 바람의종 2012.10.30 8161
427 '굿바이 슬픔' 윤안젤로 2013.03.05 8164
426 꿈은 춤이다 바람의종 2012.06.13 8165
425 바람의종 2012.02.02 8171
424 인생 기술 바람의종 2013.01.21 8171
423 가을이 떠나려합니다 風文 2014.12.03 8174
422 가을 오후 - 도종환 (94) 바람의종 2008.11.15 8176
421 사사로움을 담을 수 있는 무한그릇 바람의종 2008.02.03 8179
420 선한 싸움 風文 2014.12.22 8180
419 무관심 바람의종 2008.03.12 8189
418 '나는 내가 바꾼다' 중에서 바람의종 2008.03.08 8191
417 진실한 사랑 바람의종 2008.02.11 8193
416 전혀 다른 세계 바람의종 2008.10.17 8195
415 "일단 해봐야지, 엄마" 風文 2014.12.24 8210
414 「쌍둥이로 사는 일」(시인 길상호) 바람의종 2009.07.14 8216
413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다 바람의종 2012.12.21 8220
412 벽을 허물자 바람의종 2008.11.29 8221
411 향기에서 향기로 바람의종 2012.12.31 822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98 99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