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01 14:01
새 - 도종환 (135)
조회 수 6075 추천 수 10 댓글 0
고고한 몸짓으로 날아가던 새들이 물가 진흙탕에 내려 물고기를 잡아먹는 걸 볼 때가 있습니다. 비린 물고기로 허기를 채우기 위해 그 우아하던 날개에 온통 진흙칠을 하고 있는 다리 긴 새들. 꽉 다문 조개의 입을 벌리기 위해 부리로 여기저기 두드리거나 들었다 놓는 동안 깃털과 입가에 온통 흙물을 묻힌 채 분주하게 움직이는 새들. 점점 더러워지는 물가, 줄어드는 먹이, 그래도 먼 길을 가기 위해선 뻘흙을 파지 않으면 안 되는 새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먹이를 찾는 그 새들의 처절한 모습을 유심히 들여다보다 다른 생각이 듭니다. '소름끼치는 털투성이 벌레를 잡아먹어 가면서도 저 새들은 저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구나. 온 몸에 흙칠을 해가면서도 저 새들은 다시 하늘로 날아가는구나. 제 하늘 제 갈 길을 찾아 가는구나. 저렇게 하면서 제 소리 제 하늘을 잃지 않고 지켜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름다운 새들이라고 이슬만 마시거나 귀한 나무열매만을 먹으며 고고하게 사는 게 아니라 처절하게 사는구나. 그들의 그런 처절함을 보지 않고 우리는 멀리 떨어져 바라보며 그저 편한 생각, 인간 위주의 한가한 생각만을 해 왔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사실은 사람도 짐승도 다 그렇게 사는 게 아닙니까? 생존에 대해서는 누구나 그런 뜨거운 면이 있으면서 그걸 못 본 체 안 본 체 외면하며 사는 때는 없는지요.
물론 제 한 목숨 지탱하는 일만을 위해 약한 자를 짓밟고 착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생존의 최고 가치는 약육강식일 뿐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탐욕스러움만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짐승이 있습니다. 그러나 있는 힘을 다해 먹이를 찾고 그 힘으로 다시 아름다운 소리를 숲에 되돌려 주는 새처럼, 힘찬 날갯짓으로 하늘에 가득한 새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땀 흘려 일하고 그 건강한 팔뚝으로 인간다움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은 아름답습니다. 성실히 최선을 다해 일하고 나서도 제 빛깔 제 향기를 지니는 사람은 훌륭하게 보입니다. 궂은 일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고 고생스럽게 일하면서도 자상한 엄마와 따뜻한 아빠로 돌아와 있는 이들의 모습은 존경스럽습니다. 거기에 여유와 나눔과 음악 한 소절이 깃들어 있는 것을 상상해 보는 일은 상상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습니다.
그래서 오늘 똑같은 그 새들이 다르게 보입니다. 아니 똑같은 그 새들을 다르게 봅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 風文 | 2023.02.04 | 3992 |
공지 | 친구야 너는 아니 1 | 風文 | 2015.08.20 | 92925 |
423 | '우산 쓴 시각 장애인을 보신 적 있으세요?' | 風文 | 2022.05.10 | 563 |
422 | 자글자글 주름을 펴주는 명약 | 風文 | 2022.05.10 | 598 |
421 | 상대와 눈을 맞추라 | 風文 | 2022.05.10 | 462 |
420 | 행복의 치유 효과 | 風文 | 2022.05.11 | 532 |
419 | 책임을 지는 태도 | 風文 | 2022.05.11 | 609 |
418 | 자기 인생을 공유하는 사람들 | 風文 | 2022.05.11 | 556 |
417 | 말실수 | 風文 | 2022.05.11 | 573 |
416 | 저절로 좋은 사람 | 風文 | 2022.05.12 | 422 |
415 | 평화롭다. 자유롭다. 행복하다 | 風文 | 2022.05.12 | 596 |
414 | 미세먼지가 심해졌을 때 | 風文 | 2022.05.12 | 382 |
413 | 혼돈과 어둠의 유혹 | 風文 | 2022.05.12 | 478 |
412 | 공감 | 風文 | 2022.05.16 | 412 |
411 | 왜 '지성'이 필요한가 | 風文 | 2022.05.16 | 370 |
410 | 사람들이랑 어울려봐요 | 風文 | 2022.05.16 | 494 |
409 | 늙는 것에 초연한 사람이 있을까 | 風文 | 2022.05.16 | 675 |
408 | 스토리텔링(Story Telling)과 스토리두잉(Story Doing) | 風文 | 2022.05.17 | 719 |
407 | 자기 느낌 포착 | 風文 | 2022.05.17 | 674 |
406 | 아침에 일어날 이유 | 風文 | 2022.05.17 | 499 |
405 | 자녀의 팬(fan)이 되어주는 아버지 | 風文 | 2022.05.17 | 563 |
404 | '평생 교육'이 필요한 이유 | 風文 | 2022.05.18 | 406 |
403 |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다' | 風文 | 2022.05.18 | 379 |
402 |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 風文 | 2022.05.18 | 402 |
401 | 누군가의 웃음 | 風文 | 2022.05.18 | 606 |
400 | 별빛 | 風文 | 2022.05.20 | 858 |
399 | 어머니의 육신 | 風文 | 2022.05.20 | 3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