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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81002190453&Section=04"영원히 변하지 않는 영혼은 있는가?"
[철학자의 서재] <진과 대니>


자아 찾기와 다문화주의

진은 미국으로 이민을 간 중국인이다. 그가 미국 문화에 적응하면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참다운 자아를 찾는 과정이 책 속에서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전개된다.

자아 찾기는 시공간을 통틀어 어느 시기나, 어느 지역에서나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러나 이 책의 자아 찾기는 21세기의 세계사적 현실이면서 동시에 동남아시아인의 유입이 증가하는 한국에서 확산되는 '다문화주의'를 시기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다. 다문화적 자아 찾기는 서로 다른 국가 간의 충돌보다는, 한 국가 안에 살지만 인종, 민족, 종교, 관습, 계층, 교육 정도를 포괄하는 문화적 차원이 다른 사람들 간의 충돌 속에서 이루어진다.

자아 정체성을 찾는 것은 '나'와 '타인'의 관계를 반추하면서 진행되지만, 다문화 사회라면 나와 타인의 관계 속에 '나의 문화'와 '타인의 문화' 간의 갈등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변신하는 주인공들, 트랜스포머

이 책은 타문화를 받아들여서 그 문화를 좇는 것을, 그리고 타문화의 모습대로 나를 변형하는 것을 '트랜스포머'로 규정한다. 책의 주인공은 진이지만, 자아 찾기의 중심에는 대니, 손오공, 웨이첸이 옴니버스 식으로 등장하며 서로 중첩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변신(트랜스폼)을 거치는 자는 진, 인간처럼 되기 위해 인간의 신을 신는 손오공, 인간을 섬기는 사자 역할을 부여받은 웨이첸이다.

진은 중국인이며, 어렸을 때는 중국인 친구들과 재미있게 논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미국 학생들과 사귀지 못하고 외롭게 지낸다. 한 명을 사귀기는 하지만, 먹보이면서 바보라서 미국인 사이에서도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이다.

대니는 미국인인데, 중국인 사촌 형제 친키가 있다. 간혹 사촌 형제가 찾아와서 대니가 미국인이 아니라 중국인으로 착각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학교 생활이 불편하다. 중국인으로 취급받기 싫어하는 대니는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두려워 계속 전학을 다닌다.

웨이첸은 진이 다니는 학교에 전학을 온 중국인이다. 전학을 온 웨이첸이 학생에게 소개받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은 왠지 그를 두들겨 패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웨이첸이 보여준 모습은 진이 전학을 와서 처음 소개받을 때 보여준 행동과 유사하며 선생님의 소개 과정도 진을 소개할 때의 실수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마음이 생긴다. 진은 웨이첸을 싫어하지만, 웨이첸이 미국으로 올 때 그의 아버지가 주셨다는 트랜스포머 인형을 발견하고서 친해지기 시작한다.

각 장마다 주인공을 달리하여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앞장의 주인공이 변신하여 뒷장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이 차후에 드러난다. 옴니버스 식으로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얘기는 별개의 얘기가 아니라, 뒤의 주인공이 앞의 주인공의 또 다른 자아로 드러나면서 드라마틱한 반전을 이룬다.

예를 들면 서양인 대니는 영혼을 버리고서 만든 진의 다른 모습이다. 대니의 중국인 사촌 형제 친키는 손오공의 변신이다. 웨이첸은 손오공의 아들이며, 진이 영혼을 유지하고 양심을 회복하도록 섬기는 사자이다. 그러나 웨이첸은 그가 사귀는 일본인 여학생 수지에게 진이 일방적으로 키스를 하고 진 자신이 미국 학생에게 당한 것과 유사한 행동을 웨이첸에게 고스란히 재현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에게 실망하여 사자 역할을 그만둔다. 그러자 이제는 미국인처럼 변신해 버린 대니에게 친키, 즉 손오공이 대신 찾아온다. 손오공은 대니가 영혼을 회복하여 진으로 변신하도록 자극을 준다. 그리고 웨이첸이 사자 역할로 회귀하도록 도와 달라고 진에게 부탁한다.

웨이첸은 진의 성장을 도와주는 사자이지만, 웨이첸도 진을 통해 성장통과 자아 찾기 모두에서 도움을 받는 구조를 지닌다. 도와주고 배려하는 인간관계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적 관계이다. 대니와 친키 또한 진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변신하기=영혼을 버리기






▲ <진과 대니>(진루엔양 지음, 이청채 옮김, 비아북 펴냄) ⓒ프레시안

드라마틱한 반전, 사자와 인간간의 역할 반전 속에서 다른 문화를 지닌 타인이 나의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면, 다양한 모습들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것을 마치 다중인격처럼 처리하며, 서로 만나서는 안 되는 인격들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고 있다.

오해의 시작은 트랜스포머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보여주는 한약방 할머니의 입을 통해 미리 예견할 수 있다. 한약방 할머니는 "네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쉽게 될 수 있단다 (…) 네 영혼을 버릴 마음만 있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어."라고 말한다.

타문화를 받아들이는 것, 내가 타문화 사람의 정체성을 갖는 것은 '영혼을 버리는 것'으로 간주된다. 여기에서 '영혼'의 의미는 무엇인가? '영혼을 버리는 것'이 뒤에서는 '양심을 상실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규정된다.

트랜스포머를 '영혼과 양심을 버리는 것'으로 은유하는 것은 내가 아닌 모습으로 (억지로) 되려고 하지 말라는 경고이며, 나의 정체성을 찾아갈 때 기존의 문화적 정체성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문점이 남는다. 나의 정체성, 나의 고유성, 나의 본래성이 무엇인가? 중국인이 서양인처럼 되려고 하는 것은 본래성을 잃는 행위인가? 정체성이 민족적, 종족적 요소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는가?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인의 모습에서 벗어나는 것이 영혼을 버리는 것으로 과대 해석된다. 다른 문화의 정체성을 쫓아가는 것이 양심을 버리는 것으로 간주된다. 진이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성장할 때, 필자는 정체성과 본래성을 영원히 고정된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어떻게 비판하든 간에, 인간은 끊임없는 변화 속에 있고 주변의 영향을 받아 달라진다. 변하기 때문에 동일성 찾기가 문제시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변화 가운데 나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나를 상정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 될 수 있다.

변화 속에서 추구되는 것이라면, 나의 정체성은 성장 과정에서 주어지는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인종적 조건들의 어울림에서 확립된다. 중국 문화를 버리고 미국 문화를 쫓는 것은 어떤 면에서 나의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때 중국적 정체성만도, 미국적 정체성만도 아닌 정체성이 등장할 수 있다. 어떤 정체성일지는 아직 추측할 수 없지만.

변신의 변신, 트랜스폼의 긍정성

나의 모습이 아닌데, 다른 모습으로 억지로 되려고 하다 보면, 불법을 저지를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양심만 버린다면, 현재의 착한 모습에서 얼마든지 악인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법과 악인으로의 전락이 아니라면, 나의 정신세계와 생활 습관과 문화 양식은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만들어지며, 인간은 트랜스포머를 통해 성장한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도 변신을 영혼과 양심을 버리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과도한 자기중심주의나 부적절한 범주 사용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그런데도 책의 저자가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쓰는 것은, 어떤 자아 정체성과 어떤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든지 간에 '나'를, '나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고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대니를 찾아온 손오공이 인간처럼 되기 위해 악전고투하다 깨달은 것을 다음처럼 말한다. "내가 원숭이로 태어난 게 정말 좋다는 사실만 내가 일찍 깨달았어도 500년 동안의 감옥 생활은 면할 수 있었어". 그의 깨달음은 나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간에 나의 존재 자체를, 나의 본래 모습 그대로를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들(자유자)이 존재 자체에 만족을 느끼듯이, 스스로 존재하지는 못하지만 유한한 규정과 유한한 한계를 지니는 '인간 유한자들'도 존재 자체에 만족하라는 메시지이다.

나의 존재 자체에 가치를 두고, 나의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면, 반대로 타인의 존재도 있는 그대로 가치가 있고,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나의 존재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은 타인의 존재에 대한 무조건적 인정을 낳게 된다. 나에 대한 참다운 인정은 나와 타인 간의 가치 우열을 사라지게 하므로, 타인에 대한 참다운 인정으로 이어진다. 각 개인, 각 문화가 절대적 가치를 지닌다면 비교 우위를 상실하면서 문화의 중심도, 문화의 주변도 사라진다. 특정 문화의 우월성, 즉 서양 문화의 우월성과 중국 문화의 열등성, 서양적 자아의 우월성과 중국적 자아의 열등성이 자연스럽게 깨지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추가 질문, 즉 "진은 왜 대니로 되려고 하는가?"까지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중국인이 서양으로 이민을 간 것이라서 주류 문화는 서양 문화이고, 중국 문화는 주변 문화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진은 주류 문화에 동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서양인의 생활 방식과 서양 학생의 태도가 마치 중국 문화와 중국적 생활 방식을 열등하다고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 진에 대한 학생들의 무시, '왕따'가 눈에 띄며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반대로 서양인이 중국으로 이민을 간다면, 서양인도 주류 중국 문화에 동화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서양인이 동양인을 누런둥이라고 부르듯이, 중국인도 서양인을 흰둥이라고 부를까? 타문화 속의 서양인도 진처럼 왕따를 당한다고 느낄까? 무시당한다는 문화적 열등감을 느끼게 될까?

왕따와 무시와 우열 의식의 발생 여부를 떠나서, 타문화로의 이민과 이주는 어떤 형태로든 충돌을 일으키고, 상대편 문화와 접목되기 위해 트랜스포머를 작동시키게 된다. 그러므로 트랜스포머를 영혼과 양심을 버리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자문화중심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 진이 대니로 변신하는 것을 타문화중심주의나 양심 버리기로만 간주하면, 이분법적 우열 의식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진에서 대니로 '변신'하고, 다시 대니에서 진으로 '변신의 변신'을 거칠 때 나의 존재에 대한 사랑이 가능하며 새로운 나를 마주하게 된다. 영혼 버리기는 변신의 변신 속에서 자아 정체성을 찾기 위해 겪어야 할 과정이며, 변신을 통해 '회복된 진'은 '최초의 진'과 달리 '발전된 진'이 된다.

다문화주의 속에서 동등한 자아실현

나의 본래적 자아, 본래적 문화는 나와 다른 문화적 인격을 찾아 변신을 거듭하는 가운데 형성되는 것이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영혼을 전제하면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문화를 찾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후자는 트랜스포머의 긍정성과 성장 과정의 소중함을 빛바래게 한다. 타문화 지향적 태도도, 자문화 지향적 태도도 모두 트랜스폼의 한 단계로 여기면서 자기 성장의 중요한 과정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변신할 수밖에 없는 다문화 상황에서 다중인격을 통합적으로 반성할 때만이 중심이 우월하고 주변이 열등하다는 이분법이 깨지게 된다. 끝내는 모두가 절대적 가치를 지닌다는 자각 속에서 새로운 문화, 새로운 자아 정체성이 형성될 수 있다. 자신이 타인이나 타문화에 함몰되지 않는 중심을 찾는 방법은 변신의 변신이며, 이로 인해 다문화주의 삶의 태도와 인정도 가능해진다.

다문화 속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진은 현 한국 사회에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동안 단일 민족을 고수하던 한국 사회에서도 이주 노동자와 이주 여성이 늘어나고 국제 결혼, 혼혈 2세의 초등학교 진학률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인도 자아 정체성과 문화 정체성을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진과 대니, 원숭이와 웨이첸 같은 트랜스포머를 견뎌내야 한다. 그런 견딤을 통해 자신에 대한 사랑과 타인에 대한 인정이, 중심과 주변의 해체가, 정체성 형성의 자유로움과 상호 동등성이 실현될 것이다.






진 루엔 양(Gene Luen Yang)

만화를 그리면서 동시에 고등학교에서 컴퓨터 공학을 가르치며, 한국인 아내, 그리고 두 아이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살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만화를 그리기 시작해서 1997년 <고든 야마모토와 괴짜 왕(Gordon Yamamoto and the King of the Geeks)>으로 미국 만화계의 권위 있는 제릭 재단(Xeric Foundation)의 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진과 대니>로 전미문학상 최우수상 최종 후보에까지 올랐다. 전미문학상 57년 역사에서 만화가 최종 후에까지 오른 것은 역사상 최초였다. 전미도서관협회에서 수여하는 마이클 L 프린츠 상 또한 만화로서는 최초의 수상이었고, 그 이외에 여러 가지 많은 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들은 샌프란시스코 만화예술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으며, 현재는 한국계 미국인인 데릭 커크 김(Derek Kirk Kim)과 공동 작품집을 준비 중이다.


/이정은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연구원·연세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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