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29 13:29
모과꽃 - 도종환 (148 - 끝.)
조회 수 6655 추천 수 20 댓글 0
봄비가 퍼부은 날도 있었고, 바람이 심하게 불고 황사 몰려온 날도 있었으며, 며칠씩 흐린 날이 이어지기도 했고, 엊그제는 산 너머에 눈이 내렸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꽃샘추위를 견디느라 힘든 밤에도 나는 그저 꽃이 늘 피어 아름답게 있겠거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비와 바람 황사와 추위 속에서 언제나 환하게 피어 있는 꽃은 없습니다. 그 속에서도 꽃을 지키고 그 꽃을 푸른 잎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려고 혼자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겠습니까? 보아주는 이가 있건 없건 꽃은 저 혼자 곱게 피었다 소리 없이 돌아갑니다.
뒤뜰에 백목련 피었다 지는 시간에 창가에 모과나무 꽃순이 파란 손을 펼치며 앙증맞게 자라 오르고 있습니다. 모과꽃도 눈에 뜨일 듯 말듯 그러게 피어날 겁니다. 향기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있다가 갈 겁니다. 저도 그렇게 있고 싶습니다. 할 수 있다면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모과꽃처럼 살다 갔으면
꽃은 피는데
눈에 뜨일 듯 말 듯
벌은 가끔 오는 데
향기 나는 듯 마는 듯
모과꽃처럼 피다 갔으면
빛깔로 드러내고자
애쓰는 꽃 아니라
조금씩 지워지는 빛으로
나무 사이에 섞여서
바람하고나 살아서
있는 듯 없는 듯
---「모과꽃」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이 다 그렇듯 저도 "눈에 뜨일 듯 말 듯"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드러내고자 / 애쓰는 꽃 아니라 / 조금씩 지워지는 빛으로" 있다가 가고 싶습니다.
숲의 모든 나무가 그렇듯 "있는 듯 없는 듯" 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저 봄이면 이렇게 조촐한 꽃 하나 피워놓고 있다가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소월이 「산유화」에서 이야기한 '저만치' 거리를 두고 서 있고 싶습니다.
지난 일 년 간 이삼일에 한 통씩 여러분들께 엽서를 보냈습니다. 엽서를 여기까지 쓰고 저도 잠시 쉬겠습니다. 지는 꽃잎과 함께 "향기 나는 듯 마는 듯" 그렇게 있을까 합니다. 그동안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늘 청안하시길 바랍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 風文 | 2023.02.04 | 5581 |
공지 | 친구야 너는 아니 1 | 風文 | 2015.08.20 | 94417 |
452 | 몸은 얼굴부터 썩는다 | 風文 | 2022.02.10 | 407 |
451 | 바로 말해요, 망설이지 말아요 | 風文 | 2022.02.10 | 436 |
450 | '일을 위한 건강' | 風文 | 2022.02.10 | 545 |
449 | '위대한 일'은 따로 없다 | 風文 | 2022.02.10 | 415 |
448 | '정말 힘드셨지요?' | 風文 | 2022.02.13 | 461 |
447 | 오직 하나뿐인 돌멩이 | 風文 | 2022.02.13 | 552 |
446 | 세상에서 가장 인내심이 강한 사람 | 風文 | 2022.02.13 | 602 |
445 | 인재 발탁 | 風文 | 2022.02.13 | 428 |
444 | 중심(中心)이 바로 서야 | 風文 | 2022.02.13 | 609 |
443 | 잇몸에서 피가 나왔다? | 風文 | 2022.02.24 | 474 |
442 | 간디의 튼튼한 체력의 비결 | 風文 | 2022.02.24 | 643 |
441 | 헬퍼스 하이(Helper's High) | 風文 | 2022.02.24 | 575 |
440 | 입씨름 | 風文 | 2022.02.24 | 613 |
439 | 토끼가 달아나니까 사자도 달아났다 | 風文 | 2022.02.24 | 420 |
438 | 엄마를 닮아가는 딸 | 風文 | 2022.04.28 | 450 |
437 | 어느 날은 해가 나고, 어느 날은 비가 오고 | 風文 | 2022.04.28 | 509 |
436 | 벚꽃이 눈부시다 | 風文 | 2022.04.28 | 484 |
435 | 텅 빈 안부 편지 | 風文 | 2022.04.28 | 503 |
434 | 장애로 인한 외로움 | 風文 | 2022.04.28 | 376 |
433 | '액티브 시니어' 김형석 교수의 충고 | 風文 | 2022.05.09 | 397 |
432 |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행복할 때 | 風文 | 2022.05.09 | 486 |
431 | '용서의 언덕'을 오르며 | 風文 | 2022.05.09 | 477 |
430 | 머나먼 여행을 떠났다 돌아왔다 | 風文 | 2022.05.09 | 518 |
429 | 사랑도 기적이다 | 風文 | 2022.05.10 | 550 |
428 | 맘껏 아파하고 슬퍼하세요 | 風文 | 2022.05.10 | 3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