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023 추천 수 1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시인 정끝별)   


     2009년 6월 3일_스물다섯번째





 





첫째 아이가 다섯 살, 둘째 아이가 두 살 무렵이었다. 발발거리는 동생은 제 언니가 가지고 노는 것들만 좋아했다. 제 언니가 동화책을 읽고 있으면 발발발 기어가 책을 붙잡고 늘어져 책장을 찢어 놓기 일쑤였고, 제 언니가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발발발 달려가 크레파스를 흩트려 놓거나 그려 놓은 그림에 북북 일 획(劃)을 첨가하기 일쑤였다. 제 언니가 한참을 공들여 블록을 쌓아 놓으면 발발발 기어와 퍽 무너뜨리기 일쑤였고, 제 언니가 맛난 간식을 천천히 먹으려고 아껴 두고 있으면 발발발 달려와 덥석 제 입속에 넣고는 입을 꾹 다물고 달아나기 일쑤였다.


 


그렇지 않아도 동생이 생기고 질투와 시샘에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던 터라 그때마다 울고불고 난리인 건 늘 첫째 아이였다. 전쟁 아닌 날이 없었다. 급기야 첫째 아이는 제 동생을 괴물 보듯 살살 피해다녔고 때로는 퍽퍽 들고 있던 도구들을 날리기도 했다. 문제는 제 언니가 그러든 말든 둘째가 불굴의 자세로 너무나 꿋꿋하다는 데 있었다.


 


일은 터지게 마련이다. 어느 날 오후 듀엣의 울음 소리가 시간 차로 울려 퍼졌다. 얼굴을 감싼 채 자지러지듯 우는 동생을 마주 보며 첫째 아이가 겁먹은 눈으로 덩달아 울고 있었다. 동생의 왼쪽 볼에는 벌건 이빨 자국이 선연했다. 첫째 아이를 작은 방으로 데리고 갔다. 이빨로 물었던 행위에 대해서는 무조건 혼을 냈다. 그리고는 첫째의 변명을 들어 본즉슨 이러했다. 얼마 전에 선물받은, 그래서 제일 사랑하는 변신로롯을 ‘힘들게’ 겨우겨우 재워 놓았는데, 이불까지 곱게 덮어 놓았는데, 발발발 동생이 달려와서 제 로봇을 깔아뭉개고 입으로 물어뜯었다는 것이다.


 


속상했을 법하지 않은가. 솔로몬은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암튼 시시각각의 ‘엄마 노릇’이란 늘 힘에 부치는 일이다. 에라 모르겠다, 쓰리쿠션의 책임 호소작전으로 전환했다. 네가 얼마나 동생을 가지고 싶어 했는지, 그리고 네가 얼마나 동생을 낳아 달라고 보챘는지 환기시켰다. 네가 원했던 동생이니까 동생을 사랑해야 하고, 동생은 아직 아가니까 동생에게 양보도 해야 한다고. 첫째도 그런 책임을 느꼈던 것일까 잠시 두 눈을 껌벅이다가, 다시 왕- 울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그땐 몰랐어, 저런 동생이 나올 줄, 정말이야!"














■ 필자 소개


 




정끝별(시인)


1964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문학사상》신인 발굴 시부문에 「칼레의 바다」외 6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94년 〈동아일보〉신춘문예 평론부문에 당선된 후 시 쓰기와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2005년 현재 명지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6132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5066
527 여기는 어디인가? 風文 2021.10.31 434
526 익숙한 것을 버리는 아픔 1 風文 2021.10.31 390
525 많은 것들과의 관계 風文 2021.10.31 407
524 59. 큰 웃음 風文 2021.11.05 358
523 소리가 화를 낼 때, 소리가 사랑을 할 때 風文 2021.11.10 440
522 중간의 목소리로 살아가라 風文 2021.11.10 535
521 숨만 잘 쉬어도 風文 2021.11.10 378
520 모든 싸움은 사랑 이야기다 風文 2021.11.10 538
519 지금 이 순간을 미워하면서도 風文 2022.01.09 322
518 올 가을과 작년 가을 風文 2022.01.09 415
517 감사 훈련 風文 2022.01.09 306
516 길을 잃어도 당신이 있음을 압니다 風文 2022.01.09 420
515 소설 같은 이야기 風文 2022.01.09 532
514 더도 덜도 말고 양치하듯이 風文 2022.01.11 477
513 살아갈 힘이 생깁니다 風文 2022.01.11 427
512 상처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風文 2022.01.11 679
511 아버지의 손, 아들의 영혼 風文 2022.01.11 772
510 원하는 것을 현실로 만들려면 風文 2022.01.12 725
509 음악으로 치유가 될까 風文 2022.01.12 564
508 파도치는 삶이 아름답다 風文 2022.01.12 622
507 아이들의 잠재력 風文 2022.01.12 413
506 생애 최초로 받은 원작료 風文 2022.01.12 393
505 미래 교육의 핵심 가치 4C 風文 2022.01.13 636
504 내 기쁨을 빼앗기지 않겠다 風文 2022.01.13 739
503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風文 2022.01.13 89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94 95 96 97 98 99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