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9.05 13:09
귀뚜라미 - 도종환 (66)
조회 수 8179 추천 수 16 댓글 0
늦게 잠이 들었는데 한밤중에 또 깨었습니다. 귀뚜라미 소리가 방안 가득 울리고 있었습니다. 저 소리에 깬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로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는 귀뚜라미 한 마리가 톡 튀어 구석으로 몸을 피하고 난 뒤에도 계속해서 울어댑니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었는데도 귀뚜라미는 밤을 새워 울고 있습니다.
우리도 밤을 새워 글을 쓰고 밤을 새워가며 토론하고 인생에 대해 끝없는 질문을 던지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쓴 한 줄의 글을 남들은 아름답다 했지만 사실은 처절하였습니다. 나의 시가 나의 울음이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밤은 아무도 들어주는 이가 없어서 밤새 울었고 어떤 날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워져 버릴 수 없어서 소리 내어 울던 밤이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때 우리도 한 마리 귀뚜라미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밤을 새우며 울고 있지 않습니다. 내 소리를 알아듣는 이, 내 목소리를 어딘가에서 듣고 있을 한 사람을 위해 밤을 하얗게 새우며 울고 있지 않습니다. 치열하던 마음도 뜨겁게 끓어오르던 열정도 많이 가라앉아 있습니다. 우리 대신 귀뚜라미가 밤을 새워 울고 있습니다. 깨어 있으라고, 잠든 우리의 영혼이 다시 깨어나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다고 머리맡에 와 울면서 밤을 지킵니다.
도종환/시인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 風文 | 2023.02.04 | 7104 |
공지 | 친구야 너는 아니 1 | 風文 | 2015.08.20 | 96133 |
552 | 그가 부러웠다 | 바람의종 | 2009.07.09 | 5500 |
551 | 그 자리에서 머뭇거릴 순 없다 | 바람의종 | 2009.09.26 | 5218 |
550 | 그 아이는 외로울 것이며... | 風文 | 2014.12.30 | 7512 |
549 | 그 시절 내게 용기를 준 사람 | 바람의종 | 2008.06.24 | 7651 |
548 | 그 순간에 셔터를 누른다 | 바람의종 | 2011.01.25 | 4543 |
547 | 그 사람을 아는 법 | 윤안젤로 | 2013.03.18 | 9950 |
546 | 그 무기를 내가 들 수 있는가? | 風文 | 2015.02.15 | 6410 |
545 | 그 꽃 | 바람의종 | 2013.01.14 | 8111 |
544 | 그 길의 끝에 희망이 있다 | 바람의종 | 2012.02.27 | 4651 |
543 | 균형 | 風文 | 2019.09.02 | 557 |
542 | 귓속말 | 風文 | 2024.01.09 | 307 |
541 | 귀중한 나 | 바람의종 | 2009.06.29 | 4923 |
540 | 귀인(貴人) | 風文 | 2021.09.05 | 309 |
» | 귀뚜라미 - 도종환 (66) | 바람의종 | 2008.09.05 | 8179 |
538 | 권정생 선생의 불온서적 - 도종환 (53) | 바람의종 | 2008.08.09 | 7309 |
537 | 권력의 꽃 - 도종환 | 바람의종 | 2008.07.21 | 10938 |
536 | 굿바이 슬픔 | 바람의종 | 2008.12.18 | 7815 |
535 | 군고구마 - 도종환 (120) | 바람의종 | 2009.01.24 | 5535 |
534 | 국화(Chrysanthemum) | 호단 | 2006.12.19 | 8942 |
533 | 구조선이 보인다! | 風文 | 2020.05.03 | 454 |
532 | 구원의 손길 | 바람의종 | 2009.08.31 | 6976 |
531 | 구수한 된장찌개 | 바람의종 | 2012.08.13 | 8519 |
530 | 구름 위를 걷다가... | 바람의종 | 2012.07.02 | 6304 |
529 | 구령 맞춰 하나 둘 | 風文 | 2020.07.08 | 865 |
528 | 구경꾼 | 風文 | 2014.12.04 | 78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