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5244 추천 수 1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누구였을까」(소설가 한창훈)   2009년 6월 11일_서른두번째





 





우리 마을에 초상이 났었다.


장성한 네 딸이 모여 아버지 초상을 쳤다. 딸자식이 많은 집 초상은 유난히 슬프다고 했는데 그 집이 그랬다. 사흘 동안 울음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드디어 발인하는 날. 상여로 옮기기 직전, 집에서 망자의 마지막 식사 시간이었다. 많이 잡수고 가십시오. 네 딸은 고봉으로 담은 제삿밥을 올리고 나서 꿇어앉았다. 함지박만 한 엉덩이를 뒤로 내민 채 짜내는 울음을 쉰 목소리로 이어 갔다. 그리고 그 순간. 뿌우웅. 네 딸 사이에서 적잖은 방귀가 터져나와 버렸다.


줄지어 서 있던 문상객들은 쿡쿡, 웃음 참느라 곤욕을 보는데 정작 괴로운 이는 딸들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있자니 모양새나 상황이 너무 민망했다. 형국 변환 시도로 큰딸이 무작정 몸을 날렸다. 짝, 소리가 나게 방바닥을 치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이게 무슨 소리요. 아부지 가시는 길에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이요.”


이러다가 뒤집어쓰겠구나 싶은 둘째가 언니의 자세를 뒤따르며 외쳤다.


“나는 아니요, 아부지. 나는 아니요.”


그럼 셋째인들 가만 있겠는가.


“이런 경우는 없소. 아부지 가시는 길에 이래서는 안 되는 법이요.”


코너에 밀린 막내까지도 바닥을 치며 악 쓰듯 외쳤다.


“아부지는 아실 것이요, 아부지는 정녕 아실 것이요.”


 


우울했던 초상의 끝이 웃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상여 나가는 내내 여기저기서 웃음 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울음과 웃음이 한장소 같은 시간대에 뒤범벅되어 버린 것이다. 이상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떠나는 자리에 웃음 소리 돋아났다면 그 인생도 괜찮은 인생 아니겠는가.


어쨌든 그렇게 곤란한 상황은 벗어났는데 누가 끼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 필자 소개


 




한창훈(소설가)


1963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가던 새 본다』『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청춘가를 불러요』가 있다. 산문소설 『바다도 가끔은 섬의 그림자를 들여다 본다』와 장편소설『홍합』『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열 여섯의 섬』등이 있다. 동화 『검은섬의 전설』과 공동 산문집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를 펴냈다. 제3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3471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2457
544 뜨거운 물 바람의종 2009.06.25 4715
543 길이 울퉁불퉁하기 때문에 바람의종 2009.06.24 4899
542 「미소를 600개나」(시인 천양희) 바람의종 2009.06.23 6138
541 「호세, 그라시아스!」(소설가 함정임) 바람의종 2009.06.22 6693
540 산이 좋아 산에 사네 바람의종 2009.06.22 4434
539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바람의종 2009.06.20 6149
538 「웃음 2」(소설가 정영문) 바람의종 2009.06.19 5703
537 짧게 만드는 법 바람의종 2009.06.19 7016
536 타인의 성공 바람의종 2009.06.19 7019
535 「웃는 가난」(시인 천양희) 바람의종 2009.06.18 5830
534 세 잔의 차 바람의종 2009.06.18 5924
533 희망의 발견 바람의종 2009.06.17 8057
532 「헤이맨, 승리만은 제발!」(소설가 함정임) 바람의종 2009.06.17 7549
531 「웃음 1」(소설가 정영문) 바람의종 2009.06.16 6546
530 손을 펴고도 살 수 있다 바람의종 2009.06.16 4609
529 실천해야 힘이다 바람의종 2009.06.15 4103
528 불편하지 않은 진실 바람의종 2009.06.15 4324
527 「웃음 배달부가 되어」(시인 천양희) 바람의종 2009.06.12 5940
» 「누구였을까」(소설가 한창훈) 바람의종 2009.06.12 5244
525 젊었을 적의 내 몸은 바람의종 2009.06.12 5782
524 지금의 너 바람의종 2009.06.11 7329
523 「부모님께 큰절 하고」(소설가 정미경) 바람의종 2009.06.10 6589
522 뿌리를 내릴 때까지 바람의종 2009.06.10 5350
521 「똥개의 노래」(소설가 김종광) 바람의종 2009.06.09 6563
520 아이의 웃음 바람의종 2009.06.09 638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93 94 95 96 97 98 99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 121 Next
/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