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7720 추천 수 1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꽃밭에 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습니다.
  나팔꽃은 나팔꽃대로 분꽃은 분꽃대로 채송화는 채송화대로 모두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으로 모여 피어 있습니다. 나팔꽃은 분꽃을 부러워하지 않고, 분꽃은 채송화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맨드라미는 봉숭아를 시새움하지 않고 들국화는 달리아보다 못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 제 모습대로 곱게 피어 있습니다.
  감은 주홍빛으로 햇살 속에 탐스럽게 익어 있고, 사과는 사과대로 반짝이며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습니다. 감은 사과를 부러워하지 않고 사과는 배를 선망의 눈초리로 쳐다보지 않습니다. 똑같은 사과나무끼리 내 가지에는 열 개가 열렸는데, 옆의 나무는 스무 개가 열렸다고 시기하지 않습니다. 모두들 제 모습대로 탐스럽게 익어 있을 뿐입니다. 모과는 또 모과대로 향기에 싸여 익어 있습니다. 못생겼다고 선입견을 갖는 것은 오직 사람뿐입니다.
  기러기는 기러기의 날갯짓으로 날아가고 까치는 까치 제 몸짓으로 나뭇가지 사이를 오르내립니다. 기러기를 부러워하는 까치가 없고, 까치를 부러워하는 기러기는 없습니다. 참새는 참새로서 살아온 제 삶의 양식이 있고, 청둥오리는 저희끼리 날아다니며 만나는 하늘과 강물이 있습니다.
  그게 자연입니다. 제 모습대로 아름답고 제 모습대로 편안한 것이 자연입니다. 자연스럽다는 말은 그리하여 제 모습 그대로 편안하며 제 모습 그대로 넉넉하다는 것입니다.
  분꽃 같은 제 모습이 소박하고 수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여기지 않고, 오직 장미꽃처럼 되지 못한 것을 속상해 하는 것은 사람뿐입니다. 사과처럼 고운 제 빛깔을 탐스럽다 하지 않고 오렌지 빛깔처럼 산뜻하지 못하다고 조마조마해 하는 것도 사람뿐입니다. 아름다움에 등급을 매기고 시새움하거나 닮은꼴이 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는 것도 사람뿐입니다.
  사람은 자연 속에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면서도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여유를 잃고 있습니다. 제 자신의 삶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사람처럼 자신 없어 하는 미물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다시 한 번 너그러운 마음으로 꽃밭의 꽃들을 보세요. 이 세상 어떤 꽃도 다 제 모습 그대로 피어 있어서 아름답습니다.










   
 
  도종환/시인

  1.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Date2023.02.04 By風文 Views6046
    read more
  2. 친구야 너는 아니

    Date2015.08.20 By風文 Views94977
    read more
  3. 양철지붕에 올라

    Date2008.08.27 By바람의종 Views9953
    Read More
  4. 마음 - 도종환 (63)

    Date2008.08.31 By바람의종 Views6371
    Read More
  5. 빛깔 - 도종환 (64)

    Date2008.09.01 By바람의종 Views6585
    Read More
  6. 제국과 다중 출현의 비밀: 비물질 노동

    Date2008.09.02 By바람의종 Views9183
    Read More
  7. 박달재 - 도종환 (65)

    Date2008.09.04 By바람의종 Views5148
    Read More
  8. 귀뚜라미 - 도종환 (66)

    Date2008.09.05 By바람의종 Views8166
    Read More
  9. 불안 - 도종환 (67)

    Date2008.09.09 By바람의종 Views6686
    Read More
  10. 목백일홍 - 도종환 (68)

    Date2008.09.18 By바람의종 Views9237
    Read More
  11.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들은 아름답습니다 - 도종화 (69)

    Date2008.09.18 By바람의종 Views8425
    Read More
  12. 이치는 마음에 있다 - 도종환 (70)

    Date2008.09.18 By바람의종 Views7790
    Read More
  13. 담백한 맛과 평범한 사람 - 도종환 (71)

    Date2008.09.19 By바람의종 Views7331
    Read More
  14. 기적의 탄생

    Date2008.09.22 By바람의종 Views6600
    Read More
  15. 내적 미소

    Date2008.09.23 By바람의종 Views6866
    Read More
  16. 고흐에게 배워야 할 것 - 도종환 (72)

    Date2008.09.23 By바람의종 Views9091
    Read More
  17. 글에도 마음씨가 있습니다

    Date2008.09.23 By바람의종 Views4943
    Read More
  18. 새로운 발견

    Date2008.09.24 By바람의종 Views4796
    Read More
  19. 가을엽서 - 도종환 (73)

    Date2008.09.24 By바람의종 Views7041
    Read More
  20. 쉽게 얻은 기쁨은 빨리 사라진다

    Date2008.09.25 By바람의종 Views5321
    Read More
  21. 누군가를 마음으로 설득하여보자!

    Date2008.09.25 By바람의종 Views5467
    Read More
  22. TV에 애인구함 광고를 내보자

    Date2008.09.25 By바람의종 Views9602
    Read More
  23. 다크서클

    Date2008.09.26 By바람의종 Views7641
    Read More
  24. 아름다움과 자연 - 도종환 (74)

    Date2008.09.26 By바람의종 Views7720
    Read More
  25. 네가 올 줄 알았어

    Date2008.09.27 By바람의종 Views5743
    Read More
  26. 친구라는 아름다운 이름

    Date2008.09.29 By바람의종 Views7915
    Read More
  27. 그대와의 인연

    Date2008.09.29 By바람의종 Views6751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