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5409 추천 수 1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따뜻한 상징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데 어깨가 시려옵니다. 창문 쪽에서 한기가 한 호흡씩 밀려오는 게 보입니다. 커튼을 쳤지만 그것만으로 냉기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밤이 깊어지면서 기온이 점점 내려가고 있는 게 방안에서도 느껴집니다. 난로에 불을 피울까 하다가 오늘은 이대로 견뎌보자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큰 추위가 몰려올 걸 생각하니 땔나무를 좀 아껴야겠습니다. 오늘 같은 겨울밤, 시린 어깨를 모포로 감싸며 견뎌야 할 시련의 날들에 대해 생각하며 깊게 잠들지 못하는 이들이 있을 겁니다.

어떤 밤에 혼자 깨어 있다 보면 이 땅의 사람들이 지금 따뜻하게 그것보다는, 그들이 그리워하는 따뜻하게 그것만큼씩 춥게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눈물겨워지는지 모르겠다 조금씩 발이 시리기 때문에 깊게 잠들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눈물겨워지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꿈에도 소름이 조금씩 돋고 있는 것이 보이고 추운 혈관들도 보이고 그들의 부엌 항아리 속에서는 길어다 놓은 이 땅의 물들이 조금씩 살얼음이 잡히고 있는 것이 보인다 요즈음 추위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요즈음 추위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들의 문전마다 쌀 두어 됫박쯤씩 말없이 남몰래 팔아다 놓으면서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싶다 그렇게 밤을 건너가고 싶다 가장 따뜻한 상징, 하이얀 쌀 두어 됫박이 우리에겐 아직도 가장 따뜻한 상징이다

정진규 시인도「따뜻한 상징」이란 시에서 춥게 잠들어 있는 사람을 생각하며 이렇게 눈물겨워 합니다. 발이 시려서 깊게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래서 "그들의 꿈에도 소름이 조금씩 돋고 있는 것이 보이고 추운 혈관들도 보이"는 것 같다고 합니다. "부엌 항아리 속에서는 길어다 놓은 이 땅의 물들이 조금씩 살얼음이 잡히고 있는" 겨울밤 "그들의 문전마다 쌀 두어 됫박쯤씩 말없이 남몰래 팔아다 놓으면서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싶다" 고 합니다.


















 


나도 춥고 배고프던 소년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친구들이 집집마다 쌀 두어 됫박씩 걷어 마루에 놓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마루에 놓여 있던 하이얀 쌀자루를 생각합니다. 내게 그 쌀자루는 언제나 따뜻한 상징입니다. "요즈음 추위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우리에겐 오늘도 역시 따뜻한 상징이 필요합니다. 그 상징은 진정으로 아픔을 나누려는 따뜻한 마음이 만들어 내는 상징입니다.

/도종환 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2636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1519
2694 신의 선택 바람의종 2008.12.15 4732
2693 기초, 기초, 기초 바람의종 2008.12.15 6157
2692 따뜻한 사람의 숨결 - 도종환 (107) 바람의종 2008.12.15 5230
2691 젊은 친구 바람의종 2008.12.17 5081
2690 사랑을 받고 큰 아이가 사랑을 베풀 줄 안다 바람의종 2008.12.17 5386
2689 바다로 가는 강물 - 도종환 (108) 바람의종 2008.12.18 7143
2688 굿바이 슬픔 바람의종 2008.12.18 7717
2687 슬픔의 다음 단계 바람의종 2008.12.19 5139
2686 초겨울 - 도종환 (109) 바람의종 2008.12.23 8028
2685 일곱 번씩 일흔 번의 용서 - 도종환 (110) 바람의종 2008.12.23 4670
2684 하늘에 반짝반짝 꿈이 걸려있다 바람의종 2008.12.23 5645
2683 진흙 속의 진주처럼 바람의종 2008.12.23 8697
2682 자랑스런 당신 바람의종 2008.12.23 7392
2681 예수님이 오신 뜻 - 도종환 (111) 바람의종 2008.12.26 5170
2680 외물(外物) 바람의종 2008.12.26 6241
2679 이제 다섯 잎이 남아 있다 바람의종 2008.12.26 5421
2678 희망의 스위치를 눌러라 바람의종 2008.12.27 8045
2677 눈 - 도종환 (112) 바람의종 2008.12.27 7651
2676 어떤 이가 내게 정치소설가냐고 물었다 - 이외수 바람의종 2008.12.28 8810
» 따뜻한 상징 - 도종환 (113) 바람의종 2008.12.30 5409
2674 아남 카라 바람의종 2008.12.30 5887
2673 남들도 우리처럼 사랑했을까요 바람의종 2008.12.30 6330
2672 슬픔을 겪은 친구를 위하여 바람의종 2008.12.30 4506
2671 출발점 - 도종환 (114) 바람의종 2009.01.23 4641
2670 집 짓는 원칙과 삶의 원칙 - 도종환 (115) 바람의종 2009.01.23 481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121 Next
/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