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10193 추천 수 1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산과 들의 나무들이 황홀하게 물들고 있는 가을입니다. 단풍이 든다는 것은 나무가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한 해 동안 나무를 나무이게 만든 것은 나뭇잎입니다. 꽃이나 열매보다 나무를 더 가까이 하고, 나무와 많은 시간을 보낸 것도 나뭇잎입니다. 꽃은 아주 잠깐 나무에게 왔다가 갑니다. 열매도 나뭇잎처럼 오랜 시간 나무와 함께 있지는 않습니다. 봄에 제일 먼저 나무를 다시 살아나게 한 것도 나뭇잎이고, 가장 오래 곁에 머물고 있는 것도 나뭇잎입니다.
  
  나뭇잎을 뜨거운 태양 볕으로부터 보호해 준 것도 나뭇잎이지만, 바람에 가장 많이 시달린 것도 나뭇잎입니다. 빗줄기에 젖을 때는 빗줄기를 막아주었고, 벌레와 짐승이 달려들 때는 자기 몸을 먼저 내주곤 했습니다. 나무도 나뭇잎이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잘 알겁니다. 나뭇잎은 '제 삶의 이유' 였고 '제 몸의 전부'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나뭇잎을 버려야 할 때가 있다는 걸 나무는 압니다.
  
  그것까지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섭니다. 나는 단풍으로 황홀하게 물드는 나무를 보며, 버리면서 생의 절정에 서는 삶을 봅니다. 방하착(放下着)의 큰 말씀을 듣습니다.










   
 
  도종환/시인

  1.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Date2023.02.04 By風文 Views4814
    read more
  2. 친구야 너는 아니

    Date2015.08.20 By風文 Views93623
    read more
  3. 아,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인가 - 도종환 (84)

    Date2008.10.22 By바람의종 Views5108
    Read More
  4. 좋은 생각, 나쁜 생각

    Date2008.10.22 By바람의종 Views8725
    Read More
  5. 아무도 가지 않은 길

    Date2008.10.22 By바람의종 Views5862
    Read More
  6. 눈물 속에 잠이 들고, 기쁜 마음으로 일어났다

    Date2008.10.23 By바람의종 Views7046
    Read More
  7.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Date2008.10.23 By바람의종 Views7847
    Read More
  8. 깊이 바라보기

    Date2008.10.24 By바람의종 Views5820
    Read More
  9. 벌레 먹은 나뭇잎 - 도종환 (85)

    Date2008.10.25 By바람의종 Views8177
    Read More
  10. 멈출 수 없는 이유

    Date2008.10.25 By바람의종 Views7575
    Read More
  11. 헤어졌다 다시 만났을 때

    Date2008.10.27 By바람의종 Views8189
    Read More
  12. 혼자라고 느낄 때

    Date2008.10.29 By바람의종 Views7651
    Read More
  13. 내 몸은 지금 문제가 좀 있다

    Date2008.10.29 By바람의종 Views5996
    Read More
  14. 은행나무 길 - 도종환 (86)

    Date2008.10.29 By바람의종 Views6495
    Read More
  15. 김성희의 페이지 - 가을가뭄

    Date2008.10.30 By바람의종 Views8368
    Read More
  16. 사랑도 뻔한 게 좋다

    Date2008.10.30 By바람의종 Views5972
    Read More
  17. 단풍 드는 날 - 도종환 (87)

    Date2008.10.30 By바람의종 Views10193
    Read More
  18. 백만장자로 태어나 거지로 죽다

    Date2008.10.31 By바람의종 Views7337
    Read More
  19. 아홉 가지 덕 - 도종환 (88)

    Date2008.10.31 By바람의종 Views5871
    Read More
  20. 세상사

    Date2008.11.01 By바람의종 Views5918
    Read More
  21. 청소

    Date2008.11.03 By바람의종 Views7431
    Read More
  22. "10미터를 더 뛰었다"

    Date2008.11.11 By바람의종 Views7362
    Read More
  23. 그대의 삶은...

    Date2008.11.11 By바람의종 Views6404
    Read More
  24. 안네 프랑크의 일기 - 도종환 (89)

    Date2008.11.11 By바람의종 Views7074
    Read More
  25. 떨어지는 법 - 도종환 (90)

    Date2008.11.11 By바람의종 Views6746
    Read More
  26. 세상은 아름다운 곳 - 도종환 (91)

    Date2008.11.11 By바람의종 Views6413
    Read More
  27. 아주 낮은 곳에서

    Date2008.11.11 By바람의종 Views6925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