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10196 추천 수 1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산과 들의 나무들이 황홀하게 물들고 있는 가을입니다. 단풍이 든다는 것은 나무가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한 해 동안 나무를 나무이게 만든 것은 나뭇잎입니다. 꽃이나 열매보다 나무를 더 가까이 하고, 나무와 많은 시간을 보낸 것도 나뭇잎입니다. 꽃은 아주 잠깐 나무에게 왔다가 갑니다. 열매도 나뭇잎처럼 오랜 시간 나무와 함께 있지는 않습니다. 봄에 제일 먼저 나무를 다시 살아나게 한 것도 나뭇잎이고, 가장 오래 곁에 머물고 있는 것도 나뭇잎입니다.
  
  나뭇잎을 뜨거운 태양 볕으로부터 보호해 준 것도 나뭇잎이지만, 바람에 가장 많이 시달린 것도 나뭇잎입니다. 빗줄기에 젖을 때는 빗줄기를 막아주었고, 벌레와 짐승이 달려들 때는 자기 몸을 먼저 내주곤 했습니다. 나무도 나뭇잎이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잘 알겁니다. 나뭇잎은 '제 삶의 이유' 였고 '제 몸의 전부'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나뭇잎을 버려야 할 때가 있다는 걸 나무는 압니다.
  
  그것까지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섭니다. 나는 단풍으로 황홀하게 물드는 나무를 보며, 버리면서 생의 절정에 서는 삶을 봅니다. 방하착(放下着)의 큰 말씀을 듣습니다.










   
 
  도종환/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5020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3901
2777 아,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인가 - 도종환 (84) 바람의종 2008.10.22 5119
2776 좋은 생각, 나쁜 생각 바람의종 2008.10.22 8738
2775 아무도 가지 않은 길 바람의종 2008.10.22 5871
2774 눈물 속에 잠이 들고, 기쁜 마음으로 일어났다 바람의종 2008.10.23 7053
2773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바람의종 2008.10.23 7867
2772 깊이 바라보기 바람의종 2008.10.24 5849
2771 벌레 먹은 나뭇잎 - 도종환 (85) 바람의종 2008.10.25 8188
2770 멈출 수 없는 이유 바람의종 2008.10.25 7583
2769 헤어졌다 다시 만났을 때 바람의종 2008.10.27 8209
2768 혼자라고 느낄 때 바람의종 2008.10.29 7664
2767 내 몸은 지금 문제가 좀 있다 바람의종 2008.10.29 5999
2766 은행나무 길 - 도종환 (86) 바람의종 2008.10.29 6505
2765 김성희의 페이지 - 가을가뭄 바람의종 2008.10.30 8372
2764 사랑도 뻔한 게 좋다 바람의종 2008.10.30 5980
» 단풍 드는 날 - 도종환 (87) 바람의종 2008.10.30 10196
2762 백만장자로 태어나 거지로 죽다 바람의종 2008.10.31 7352
2761 아홉 가지 덕 - 도종환 (88) 바람의종 2008.10.31 5871
2760 세상사 바람의종 2008.11.01 5930
2759 청소 바람의종 2008.11.03 7433
2758 "10미터를 더 뛰었다" 바람의종 2008.11.11 7386
2757 그대의 삶은... 바람의종 2008.11.11 6418
2756 안네 프랑크의 일기 - 도종환 (89) 바람의종 2008.11.11 7087
2755 떨어지는 법 - 도종환 (90) 바람의종 2008.11.11 6754
2754 세상은 아름다운 곳 - 도종환 (91) 바람의종 2008.11.11 6436
2753 아주 낮은 곳에서 바람의종 2008.11.11 692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