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10.07 13:26

여백 - 도종환 (77)

조회 수 11477 추천 수 1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 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 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언덕 위에 있는 나무들, 산 위에 있는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그 뒤로 광활한 하늘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는 거기서 여백이 주는 아름다움을 봅니다. 솟대가 빽빽한 건물에 가려 있으면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솟대의 뒤에는 빈 하늘이 배경이 되어 있어야 솟대다워 보입니다. 그래야 솟대의 아름다운 멋이 살아납니다.
  
  화폭을 유화물감으로 빈틈없이 채우기보다 여백으로 그냥 남겨두는 한국화가 저는 좋습니다. 조각품도 작품 주위에 빈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작품의 맛이 제대로 살아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을 네거티브 스페이스라고 합니다.
  
  사람도 살아가는 동안 여기저기 여백을 마련해 두어야 합니다. 하루의 일정 중에 단 한 시간도 여백이 있는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루 생활 중에도 여백의 시간이 있어야 하고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정신적인 여백을 가져야 합니다.
  
  아니 어디 한 군데쯤 비어 있는 것도 좋습니다. 완벽해 보이기보다 어딘가 허술한 구석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 더 인간답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며 사는 것도 정신적인 여백, 정신적인 여유를 더 많이 갖고자 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여백을 여러분의 배경으로 삼아보세요. 그리로 바람 한 줄기 지나가게 해 보세요.










   
 
  도종환/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2971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1882
2794 무엇이 소중한가 - 도종환 (75) 바람의종 2008.09.30 6311
2793 의심과 미움을 버리라 바람의종 2008.09.30 6807
2792 바로 지금 바람의종 2008.10.01 5816
2791 바다로 가는 강물 - 도종환 (76) 바람의종 2008.10.04 5399
2790 가장 행복하다고 느낄 때 바람의종 2008.10.04 7236
» 여백 - 도종환 (77) 바람의종 2008.10.07 11477
2788 각각의 음이 모여 바람의종 2008.10.07 7651
2787 슬픔이 없는 곳 바람의종 2008.10.07 6290
2786 들국화 한 송이 - 도종환 (78) 바람의종 2008.10.09 8982
2785 혼자서는 이룰 수 없다 바람의종 2008.10.10 7867
2784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바람의종 2008.10.10 6433
2783 내면의 싸움 바람의종 2008.10.10 5636
2782 저녁 무렵 - 도종환 (79) 바람의종 2008.10.10 8106
2781 최고의 유산 바람의종 2008.10.11 6550
2780 성인(聖人)의 길 바람의종 2008.10.13 5520
2779 하느님의 사랑, 우리의 사랑 - 도종환 (80) 바람의종 2008.10.13 7476
2778 내 인생의 걸림돌들 바람의종 2008.10.17 6947
2777 가끔은 보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바람의종 2008.10.17 6164
2776 약속 시간 15분 전 바람의종 2008.10.17 7133
2775 전혀 다른 세계 바람의종 2008.10.17 7947
2774 고적한 날 - 도종환 (81) 바람의종 2008.10.17 6945
2773 단풍 - 도종환 (82) 바람의종 2008.10.17 9180
2772 참 좋은 글 - 도종환 (83) 바람의종 2008.10.20 6466
2771 그대 이제 꿈을 말할 때가 아닌가 바람의종 2008.10.20 5885
2770 행복의 양(量) 바람의종 2008.10.20 638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 121 Next
/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