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9.09 03:49

불안 - 도종환 (67)

조회 수 6636 추천 수 1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칸나꽃 빛깔 같던 여름의 열정이 아직도 화단 구석엔 짙기만 한데 벌써 가을바람이 잎새들을 흔듭니다. 세월은 바람처럼 아무것에도 막힘이 없이 흘러갑니다. 계절이 바뀌고 세월 흐르는 것이 이처럼 살갗에 와 닿을 때면 까닭 없이 미래에 대한 불안 같은 것이 솟곤 합니다.
  
  늙음과 병듦과 죽음을 어떻게 피할 수 있습니까? 피어서 시들지 않는 꽃은 없고 지금 살아 있는 모습으로 영원히 죽지 않거나 변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스무 살 무렵에는 서른 살이 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는데, 어느새 사십대에 들어서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예순 살이 되어서 인생의 큰 고비를 넘는구나 생각하며 되돌아보는 나이 오십은 안타깝게 보낸 후회의 나날이었는데, 젊어서 생각하는 나이 오십은 아득한 불안으로 바라보게 되는 나이입니다. 그렇게 살아 보지 않은 나이에 대한 두려움과 살아 온 나날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어지는 게 인생인지도 모릅니다. 늙음과 죽음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공연한 불안함을 갖게 하는 것이 앞날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럴 때면 오늘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라고 불경에서는 가르칩니다. 오늘 나의 삶이 미래의 나의 삶을 결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하루를 사람답게 살고 있는지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땀 흘리며 살고 있는지를 먼저 돌아보라고 합니다. 오늘 하루를 부끄러움 없이 사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내가 곧 미래의 나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내가 어떤 벗과 함께 있는가를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내 마음에 맞는 벗, 그도 나와 함께 떨어질 수 없는 벗의 모습은 지금 내가 사는 모습의 반영이요 그를 보면 나의 현재와 미래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삶이 의롭고 삿되지 않으며 자신감을 가질 만하면 나 또한 내 삶에 믿음을 가져도 좋을 것입니다. 지금 그런 벗들과 함께 있다면 당신의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불경에서는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함께 굳건히 갈 수 있는 벗이 아니라면, 이 가을 지금의 삶을 떠나 그런 진정한 벗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나 또한 그런 벗을 만나기 위해 나 자신을 벼리고 다듬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어리석은 벗과 함께 가고 있다면 당장 혼자서 가기를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숫타니파아타의 비유처럼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혼자 가야 합니다. 그러면 내 외로움 내 당당함에 맞는 새로운 벗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용기가 있다면 오늘 하루의 삶이 불안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가올 하루하루의 삶 역시 불안해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도종환/시인

  1. No Image notice by 風文 2023/02/04 by 風文
    Views 4516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2. 친구야 너는 아니

  3. No Image 27Aug
    by 바람의종
    2008/08/27 by 바람의종
    Views 9933 

    양철지붕에 올라

  4. No Image 31Aug
    by 바람의종
    2008/08/31 by 바람의종
    Views 6334 

    마음 - 도종환 (63)

  5. No Image 01Sep
    by 바람의종
    2008/09/01 by 바람의종
    Views 6559 

    빛깔 - 도종환 (64)

  6. 제국과 다중 출현의 비밀: 비물질 노동

  7. No Image 04Sep
    by 바람의종
    2008/09/04 by 바람의종
    Views 5131 

    박달재 - 도종환 (65)

  8. No Image 05Sep
    by 바람의종
    2008/09/05 by 바람의종
    Views 8137 

    귀뚜라미 - 도종환 (66)

  9. No Image 09Sep
    by 바람의종
    2008/09/09 by 바람의종
    Views 6636 

    불안 - 도종환 (67)

  10. No Image 18Sep
    by 바람의종
    2008/09/18 by 바람의종
    Views 9207 

    목백일홍 - 도종환 (68)

  11. No Image 18Sep
    by 바람의종
    2008/09/18 by 바람의종
    Views 8381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들은 아름답습니다 - 도종화 (69)

  12. No Image 18Sep
    by 바람의종
    2008/09/18 by 바람의종
    Views 7760 

    이치는 마음에 있다 - 도종환 (70)

  13. No Image 19Sep
    by 바람의종
    2008/09/19 by 바람의종
    Views 7318 

    담백한 맛과 평범한 사람 - 도종환 (71)

  14. No Image 22Sep
    by 바람의종
    2008/09/22 by 바람의종
    Views 6554 

    기적의 탄생

  15. No Image 23Sep
    by 바람의종
    2008/09/23 by 바람의종
    Views 6841 

    내적 미소

  16. No Image 23Sep
    by 바람의종
    2008/09/23 by 바람의종
    Views 9055 

    고흐에게 배워야 할 것 - 도종환 (72)

  17. No Image 23Sep
    by 바람의종
    2008/09/23 by 바람의종
    Views 4923 

    글에도 마음씨가 있습니다

  18. No Image 24Sep
    by 바람의종
    2008/09/24 by 바람의종
    Views 4780 

    새로운 발견

  19. No Image 24Sep
    by 바람의종
    2008/09/24 by 바람의종
    Views 7017 

    가을엽서 - 도종환 (73)

  20. No Image 25Sep
    by 바람의종
    2008/09/25 by 바람의종
    Views 5301 

    쉽게 얻은 기쁨은 빨리 사라진다

  21. No Image 25Sep
    by 바람의종
    2008/09/25 by 바람의종
    Views 5426 

    누군가를 마음으로 설득하여보자!

  22. No Image 25Sep
    by 바람의종
    2008/09/25 by 바람의종
    Views 9572 

    TV에 애인구함 광고를 내보자

  23. No Image 26Sep
    by 바람의종
    2008/09/26 by 바람의종
    Views 7627 

    다크서클

  24. No Image 26Sep
    by 바람의종
    2008/09/26 by 바람의종
    Views 7665 

    아름다움과 자연 - 도종환 (74)

  25. No Image 27Sep
    by 바람의종
    2008/09/27 by 바람의종
    Views 5715 

    네가 올 줄 알았어

  26. No Image 29Sep
    by 바람의종
    2008/09/29 by 바람의종
    Views 7861 

    친구라는 아름다운 이름

  27. No Image 29Sep
    by 바람의종
    2008/09/29 by 바람의종
    Views 6725 

    그대와의 인연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