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7184 추천 수 1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허균의 조카 허친이 집을 짓고서 통곡헌(慟哭軒)이란 이름의 편액을 걸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크게 비웃으며 세상에는 즐길 일이 얼마나 많거늘 무엇 때문에 곡(哭)이란 이름을 내세워 집에 편액을 건단 말이냐 하며 비웃었습니다.
그러자 허친이 이렇게 대꾸하였습니다.

"저는 이 시대가 즐기는 것은 등지고, 세상이 좋아하는 것은 거부합니다. 이 시대가 환락을 즐기므로 저는 비애를 좋아하며, 이 세상이 우쭐대고 기분 내기를 좋아하므로 저는 울적하게 지내렵니다. 세상에서 좋아하는 부귀나 영예를 저는 더러운 물건인 양 버립니다. 세상에서 제일 미워하는 것은 언제나 곡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저는 곡이란 이름을 내세워 제집의 이름을 삼았습니다."

말하자면 시대의 비천함과 세태의 천박함을 보면서 통곡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저항의 마음을 편액에 담아 표현한 것입니다. 잘못된 세상과 불화하며 맞서고자 하는 사연을 듣고 허균은 조카를 비웃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국가의 일은 날이 갈수록 그릇되어 가고, 선비의 행실은 날이 갈수록 허위에 젖어들어가며, 친구들끼리 등을 돌리고 저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배신행위는 길이 갈라져 분리됨보다 훨씬 심하다. 또 현명한 선비들이 곤액(困厄)을 당하는 상황이 막다른 길에 봉착한 처지보다 심하다. 허친이 통곡한다는 이름의 편액을 내건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허균은 타락한 한 시대의 모습이 말세에 가깝다고 비판하며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였습니다. 그런 허균이 "국가의 일은 날이 갈수록 그릇되어 가고" 있는 지금의 정치 사회 상황을 보면 똑같이 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부자들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사회, 가난한 농민들을 등치는 뻔뻔한 행정, 역사를 자기 입맛에 맞게 마음대로 뜯어 고치려는 위험한 발상, 근본을 잊은 채 경쟁의 채찍만을 휘두르는 교육, 약자들에게는 추상같고 부자들에게는 너그럽게 적용되는 법률을 보면서 허균 또한 '통곡의 집'이란 편액을 써서 집집마다 나누어 주고 있을 것 같습니다.



도종환 시인


  1. No Image notice by 風文 2023/02/04 by 風文
    Views 4666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2. 친구야 너는 아니

  3. No Image 11Nov
    by 바람의종
    2008/11/11 by 바람의종
    Views 4661 

    도롱뇽의 친구들께

  4. No Image 11Nov
    by 바람의종
    2008/11/11 by 바람의종
    Views 4843 

    놀이

  5. No Image 11Nov
    by 바람의종
    2008/11/11 by 바람의종
    Views 5300 

    나는 용기를 선택하겠다

  6. No Image 11Nov
    by 바람의종
    2008/11/11 by 바람의종
    Views 5132 

    뚜껑을 열자!

  7. No Image 11Nov
    by 바람의종
    2008/11/11 by 바람의종
    Views 7550 

    친구인가, 아닌가

  8. No Image 11Nov
    by 바람의종
    2008/11/11 by 바람의종
    Views 5196 

    불은 나무에서 생겨 나무를 불사른다 - 도종환 (92)

  9. No Image 12Nov
    by 바람의종
    2008/11/12 by 바람의종
    Views 11843 

    "그래, 좋다! 밀고 나가자"

  10. No Image 12Nov
    by 바람의종
    2008/11/12 by 바람의종
    Views 7162 

    앞에 가던 수레가 엎어지면 - 도종환 (93)

  11. No Image 13Nov
    by 바람의종
    2008/11/13 by 바람의종
    Views 5487 

    아는 것부터, 쉬운 것부터

  12. No Image 13Nov
    by 바람의종
    2008/11/13 by 바람의종
    Views 7322 

    사자새끼는 어미 물어죽일 수 있는 용기 있어야

  13. No Image 14Nov
    by 바람의종
    2008/11/14 by 바람의종
    Views 7165 

    기분 좋게 살아라

  14. No Image 15Nov
    by 바람의종
    2008/11/15 by 바람의종
    Views 4989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15. No Image 15Nov
    by 바람의종
    2008/11/15 by 바람의종
    Views 8032 

    가을 오후 - 도종환 (94)

  16. No Image 17Nov
    by 바람의종
    2008/11/17 by 바람의종
    Views 5885 

    멈춤의 힘

  17. No Image 17Nov
    by 바람의종
    2008/11/17 by 바람의종
    Views 7184 

    통곡의 집 - 도종환 (95)

  18. No Image 18Nov
    by 바람의종
    2008/11/18 by 바람의종
    Views 6560 

    영혼의 친구

  19. No Image 19Nov
    by 바람의종
    2008/11/19 by 바람의종
    Views 5955 

    뼈가 말을 하고 있다

  20. No Image 20Nov
    by 바람의종
    2008/11/20 by 바람의종
    Views 7036 

    깊은 가을 - 도종환 (96)

  21. No Image 20Nov
    by 바람의종
    2008/11/20 by 바람의종
    Views 4532 

    다리를 놓을 것인가, 벽을 쌓을 것인가

  22. 침묵의 예술

  23. No Image 21Nov
    by 바람의종
    2008/11/21 by 바람의종
    Views 7090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들이 너무나 많다 - 도종환 (97)

  24. 이해

  25. 상처 난 곳에 '호' 해주자

  26. 다음 단계로 발을 내딛는 용기

  27. No Image 26Nov
    by 바람의종
    2008/11/26 by 바람의종
    Views 5742 

    돈이 아까워서 하는 말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