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5201 추천 수 1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불은 나무에서 생겨 나무를 불사른다


 불은 나무에서 생겨나 도리어 나무를 불사른다(火從木出還燒木)는 말이 있습니다. 『직지심체요절』에 나오는 고승대덕의 말입니다. 사람들은 처음에 나무에 막대를 비벼 불을 얻었습니다. 나무에서 불을 얻었으니 그 불이 꺼지지 않도록 다른 나무들을 꺾어다 계속 불에 얹었고 그 불로 몸을 덥히고 먹을 것을 만들었습니다. 나무의 처지에서 보면 나무에서 불이 생겼으나 그 불 때문에 모든 나무들이 땔감이 되고 수없이 불태워지게 된 것입니다.
  녹은 쇠에서 생겨나 쇠를 갉아 먹습니다. 쇠로 만들어진 것은 비길 데 없이 단단하지만 쇠를 못 쓰게 만들고 마는 것은 결국 쇠 자신에게서 생겨납니다. 쇠로 만든 연모는 모든 것을 베고 쓰러뜨리고 갈아엎지만 그 자신은 정작 그의 내부에서 생긴 녹으로 스러지고 맙니다.
  
  내 몸을 무너뜨리는 것도 결국은 내 자신의 내부에서 움틉니다. 외부의 자극과 시련에는 꿈쩍도 않고 버티며 살아가다가도 내부에서 나를 녹슬게 만드는 것들로 끝내는 무너지고 맙니다.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언제나 나의 내부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좋아서 시작합니다. 그 일을 하며 기뻐하고 삶의 기쁨과 보람도 거기서 느꼈는데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로 결국은 괴로워하고 번뇌하는 때가 옵니다. 사람마다 자신의 몸에 자신 있어 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몸에서 가장 자신 있어 하고 자랑스러워하던 부분이 나이 들면 제일 먼저 고장 나고 병들게 됩니다.
  
  사슴이 노루가 다른 짐승보다 더 멋있어 보이는 것은 화려하고 아름다움 뿔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슴도 그렇게 크고 멋진 관을 머리에 쓰고 있는 것이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맹수가 나타나 도망을 가야 할 때 넝쿨과 나뭇가지에 가장 걸리기 쉬운 것 또한 그 뿔입니다. 사슴은 알고 있을까요, 사냥꾼들이 그 뿔 때문에 추적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명예를 얻고자 갖은 고초를 다 겪지만 명예를 얻고 나면 그 명예 때문에 늘 가파른 벼랑 끝에 서 있어야 합니다. 권력을 얻고자 뼈가 부스러지고 살이 짓뭉개지도록 고생을 하면서도 참지만 권력을 지키는 과정도 역시 뼈를 깎고 살이 타들어가는 듯한 삶이어서 제 살과 남의 살로 깎아 만든 권력의 산꼭대기에서 외줄을 타듯 살아가야 합니다.
  
  살아가는 데 돈이 가장 전지전능한 물건인 것 같아서 돈을 벌기 위해 발버둥치다 돈 때문에 군데군데 벌겋게 녹이 슬어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 씁쓸해지는 날이 있습니다. 사랑의 따뜻한 온기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사랑의 불길이 제 몸을 태우고 사랑하던 사람의 삶도 다 태워 결국 재밖에 남기지 않는다는 걸 사람들은 겪어서 압니다. 그러나 또 자신을 태우는 일을 반복하게 되는 게 사람입니다. 저를 태우는 것이 늘 저에게서 비롯되고 저를 녹슬게 하는 것이 저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걸 알고도 같은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고는 인생을 고통의 바다라고 부릅니다. 그 바다는 누가 만들고 있는지요.










   
 
  도종환/시인

  1. No Image notice by 風文 2023/02/04 by 風文
    Views 4821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2. 친구야 너는 아니

  3. No Image 11Nov
    by 바람의종
    2008/11/11 by 바람의종
    Views 4664 

    도롱뇽의 친구들께

  4. No Image 11Nov
    by 바람의종
    2008/11/11 by 바람의종
    Views 4843 

    놀이

  5. No Image 11Nov
    by 바람의종
    2008/11/11 by 바람의종
    Views 5300 

    나는 용기를 선택하겠다

  6. No Image 11Nov
    by 바람의종
    2008/11/11 by 바람의종
    Views 5132 

    뚜껑을 열자!

  7. No Image 11Nov
    by 바람의종
    2008/11/11 by 바람의종
    Views 7550 

    친구인가, 아닌가

  8. No Image 11Nov
    by 바람의종
    2008/11/11 by 바람의종
    Views 5201 

    불은 나무에서 생겨 나무를 불사른다 - 도종환 (92)

  9. No Image 12Nov
    by 바람의종
    2008/11/12 by 바람의종
    Views 11843 

    "그래, 좋다! 밀고 나가자"

  10. No Image 12Nov
    by 바람의종
    2008/11/12 by 바람의종
    Views 7162 

    앞에 가던 수레가 엎어지면 - 도종환 (93)

  11. No Image 13Nov
    by 바람의종
    2008/11/13 by 바람의종
    Views 5487 

    아는 것부터, 쉬운 것부터

  12. No Image 13Nov
    by 바람의종
    2008/11/13 by 바람의종
    Views 7324 

    사자새끼는 어미 물어죽일 수 있는 용기 있어야

  13. No Image 14Nov
    by 바람의종
    2008/11/14 by 바람의종
    Views 7165 

    기분 좋게 살아라

  14. No Image 15Nov
    by 바람의종
    2008/11/15 by 바람의종
    Views 4989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15. No Image 15Nov
    by 바람의종
    2008/11/15 by 바람의종
    Views 8032 

    가을 오후 - 도종환 (94)

  16. No Image 17Nov
    by 바람의종
    2008/11/17 by 바람의종
    Views 5885 

    멈춤의 힘

  17. No Image 17Nov
    by 바람의종
    2008/11/17 by 바람의종
    Views 7184 

    통곡의 집 - 도종환 (95)

  18. No Image 18Nov
    by 바람의종
    2008/11/18 by 바람의종
    Views 6562 

    영혼의 친구

  19. No Image 19Nov
    by 바람의종
    2008/11/19 by 바람의종
    Views 5955 

    뼈가 말을 하고 있다

  20. No Image 20Nov
    by 바람의종
    2008/11/20 by 바람의종
    Views 7036 

    깊은 가을 - 도종환 (96)

  21. No Image 20Nov
    by 바람의종
    2008/11/20 by 바람의종
    Views 4532 

    다리를 놓을 것인가, 벽을 쌓을 것인가

  22. 침묵의 예술

  23. No Image 21Nov
    by 바람의종
    2008/11/21 by 바람의종
    Views 7090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들이 너무나 많다 - 도종환 (97)

  24. 이해

  25. 상처 난 곳에 '호' 해주자

  26. 다음 단계로 발을 내딛는 용기

  27. No Image 26Nov
    by 바람의종
    2008/11/26 by 바람의종
    Views 5742 

    돈이 아까워서 하는 말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