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9.09 03:49

불안 - 도종환 (67)

조회 수 6662 추천 수 1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칸나꽃 빛깔 같던 여름의 열정이 아직도 화단 구석엔 짙기만 한데 벌써 가을바람이 잎새들을 흔듭니다. 세월은 바람처럼 아무것에도 막힘이 없이 흘러갑니다. 계절이 바뀌고 세월 흐르는 것이 이처럼 살갗에 와 닿을 때면 까닭 없이 미래에 대한 불안 같은 것이 솟곤 합니다.
  
  늙음과 병듦과 죽음을 어떻게 피할 수 있습니까? 피어서 시들지 않는 꽃은 없고 지금 살아 있는 모습으로 영원히 죽지 않거나 변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스무 살 무렵에는 서른 살이 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는데, 어느새 사십대에 들어서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예순 살이 되어서 인생의 큰 고비를 넘는구나 생각하며 되돌아보는 나이 오십은 안타깝게 보낸 후회의 나날이었는데, 젊어서 생각하는 나이 오십은 아득한 불안으로 바라보게 되는 나이입니다. 그렇게 살아 보지 않은 나이에 대한 두려움과 살아 온 나날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어지는 게 인생인지도 모릅니다. 늙음과 죽음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공연한 불안함을 갖게 하는 것이 앞날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럴 때면 오늘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라고 불경에서는 가르칩니다. 오늘 나의 삶이 미래의 나의 삶을 결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하루를 사람답게 살고 있는지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땀 흘리며 살고 있는지를 먼저 돌아보라고 합니다. 오늘 하루를 부끄러움 없이 사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내가 곧 미래의 나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내가 어떤 벗과 함께 있는가를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내 마음에 맞는 벗, 그도 나와 함께 떨어질 수 없는 벗의 모습은 지금 내가 사는 모습의 반영이요 그를 보면 나의 현재와 미래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삶이 의롭고 삿되지 않으며 자신감을 가질 만하면 나 또한 내 삶에 믿음을 가져도 좋을 것입니다. 지금 그런 벗들과 함께 있다면 당신의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불경에서는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함께 굳건히 갈 수 있는 벗이 아니라면, 이 가을 지금의 삶을 떠나 그런 진정한 벗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나 또한 그런 벗을 만나기 위해 나 자신을 벼리고 다듬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어리석은 벗과 함께 가고 있다면 당장 혼자서 가기를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숫타니파아타의 비유처럼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혼자 가야 합니다. 그러면 내 외로움 내 당당함에 맞는 새로운 벗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용기가 있다면 오늘 하루의 삶이 불안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가올 하루하루의 삶 역시 불안해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도종환/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5694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4634
2827 올 가을과 작년 가을 風文 2022.01.09 407
2826 그녀가 당신을 사랑할 때 風文 2022.02.04 407
2825 일단 해보기 風文 2022.06.04 407
2824 아이들의 잠재력 風文 2022.01.12 409
2823 모든 순간에 잘 살아야 한다 風文 2023.02.13 409
2822 첫눈에 반한 사랑 風文 2023.04.16 409
2821 달라이라마가 말하는 '종교의 역할' 風文 2020.05.05 410
2820 좋은 관상 風文 2021.10.30 410
2819 호기심 천국 風文 2022.12.19 410
2818 '나'는 프리즘이다 風文 2023.03.02 411
2817 사는 게 힘들죠? 風文 2021.10.30 411
2816 피곤해야 잠이 온다 風文 2022.01.30 412
2815 삶을 풀어나갈 기회 風文 2022.12.10 412
2814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2.그리스의 조소미술과 도자기 風文 2023.04.19 413
2813 6개월 입양아와 다섯 살 입양아 風文 2023.01.10 414
2812 길을 잃어도 당신이 있음을 압니다 風文 2022.01.09 416
2811 몸은 얼굴부터 썩는다 風文 2022.02.10 416
2810 단골집 風文 2019.06.21 417
2809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는 습관 風文 2022.01.30 417
2808 검도의 가르침 風文 2022.02.01 418
2807 변명은 독초다 風文 2021.09.05 419
2806 '위대한 일'은 따로 없다 風文 2022.02.10 421
2805 '내일은 아이들과 더 잘 놀아야지' 風文 2022.05.23 421
2804 지금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風文 2023.05.29 421
2803 '그저 건강하게 있어달라' 風文 2022.01.26 42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