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9.01 12:07

빛깔 - 도종환 (64)

조회 수 6602 추천 수 1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기차를 타고 산 옆을 지나가면서 산 아래를 끼고 흐르는 강줄기를 바라보면 눈에 띄는 게 있습니다. 큰 강물이든 작은 여울이든 푸른 나무들이 모여 이룬 숲 근처의 물빛은 나뭇잎을 닮아서인지 나뭇잎 빛깔입니다. 늘 하늘을 누워 보면서 흐르는 바닷물은 아마 하늘을 닮아 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볼 때도 있습니다. 하늘처럼 넓은 고통, 하늘처럼 깊고 적막한 슬픔을 가까이 보면서 깊어졌기 때문에 하늘을 닮아 하늘과 같은 빛깔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
  
  살굿빛 저녁노을을 안고 흐르는 저녁 강물도 노을빛을 닮아 흐르게 마련인 것처럼 사람도 자연도 저마다의 빛깔을 지니고 있습니다. 살면서 느끼는 거지만 봄에는 봄의 빛깔이 있고 여름에는 여름의 빛깔이 있습니다. 겨울 지등산은 지등산의 빛깔을 지닌 채 육중하게 앉아 있고 가을 달래강은 달래강의 빛깔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얼굴과 표정과 목소리 속에 모두 저마다 제 빛깔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가 살아온 삶, 그의 인생관, 그의 성격이 얼굴 모습과 목소리 속에 고여 있음을 만나는 사람들마다 느낄 수 있습니다. 잿빛 승복을 입고 고개를 넘어가는 스님의 뒷모습에 어리는 구름의 빛깔은 세속의 욕망을 담담하게 접어 두고 깊어 가는 한 인간의 영혼의 색조를 느끼게 합니다.
  
  차분한 목소리, 담백한 표정의 사람과 마주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의 마음이 그를 따라 작설차 향내가 감도는 경험을 갖는 때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지금 무슨 빛깔 무슨 향내로 살고 있을까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의 물빛처럼 검게 일그러져 있는 때가 더 많지는 않은지요? 많은 날 많은 시간 우리는 자꾸 자신의 본래 모습, 본래의 빛깔로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려고 괴로워해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티 없는 새 소리 맑은 바람 소리를 들으며 자란 나뭇잎의 빛깔이 진짜 푸른빛을 지니고 있듯이, 어려서부터 나뭇잎의 진녹색 빛깔 속에서 때 묻지 않은 바람 소리를 들으며 목소리를 키워 온 새 소리가 진짜 맑은 소리를 내듯이, 우리도 그렇게 우리의 빛깔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우리의 목소리를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도종환/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6956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6046
2827 구조선이 보인다! 風文 2020.05.03 451
2826 갱년기 찬가 風文 2022.12.28 451
2825 1%의 가능성을 굳게 믿은 부부 - 릭 겔리나스 風文 2022.08.29 452
2824 경험을 통해 배운 남자 - 하브 에커 風文 2022.09.02 452
2823 그저 꾸준히 노력해 가되 風文 2023.01.08 452
2822 제가 그 희망이 되어드릴게요 風文 2023.02.04 452
2821 13. 아레스 風文 2023.11.10 452
2820 바로 말해요, 망설이지 말아요 風文 2022.02.10 454
2819 수치심 風文 2022.12.23 454
2818 지혜의 눈 風文 2022.12.31 454
2817 단 하나의 차이 風文 2023.02.18 454
2816 그녀가 당신을 사랑할 때 風文 2022.02.04 455
2815 하나만 아는 사람 風文 2023.04.03 456
2814 아이에게 '최고의 의사'는 누구일까 風文 2023.11.13 456
2813 단골집 風文 2019.06.21 457
2812 소년소녀여, 눈부신 바다에 뛰어들라! 風文 2022.05.25 457
2811 살아갈 힘이 생깁니다 風文 2022.01.11 458
2810 잠깐의 여유 風文 2022.01.26 458
2809 '이틀 비 오면, 다음 날은 비가 안 와' 風文 2022.01.29 458
2808 끈질기게 세상에 요청한 남자 - 안토니 로빈스 風文 2022.09.03 458
2807 다락방의 추억 風文 2023.03.25 458
2806 호기심 천국 風文 2022.12.19 458
2805 지금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風文 2023.05.29 458
2804 인재 발탁 風文 2022.02.13 460
2803 연애를 시작했다 風文 2022.05.25 46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