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8435 추천 수 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찬란한 슬픔의 봄 / 도종환




강진에 있는 김영랑 시인 생가 마당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자주색 모란꽃도 다 다 졌겠지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말았겠지요.
  김영랑시인의 그 가없는 기다림은 또 시작되었을까요?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마음속으로 울고 있을까요?
  삼백 예순 닷새 중에 꽃 피어 있는 날은 채 닷새 남짓한 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왜 김영랑시인은 나머지 날들은 늘 섭섭해 하면서 살았을까요?
  
  김영랑시인에게 모란은 그냥 모란이 아니었을 겁니다. 남도의 봄은 삼월이면 오기 시작하고 사월이면 온갖 꽃이 다투어 피는데 오월이 가까워져도 아직도 봄이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나의 봄"을 기다린다고 말한 데는 다른 뜻이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기다리는 나만의 봄, 모란꽃으로 빗대어 상징적으로 말한 그런 특별한 봄, 그것 자체가 "뻗쳐오르던 내 보람"인 봄, 그런 봄이 나의 봄입니다. 그런 봄이 잠깐 내게 왔다가 가고 나머지 날들은 슬픔 속에서 보내지만 그 슬픔이 언젠가는 "찬란한 슬픔"으로 완성될 것임을 믿으며 어두운 역사의 시간을 견디며 기다렸던 것입니다.
  
  "찬란한 슬픔"이란 말은 모순된 말입니다. 슬픔이 어떻게 찬란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런 시적역설 속에 역설의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슬픈 날들을 견디는 것도 언젠가는 이 슬픔의 날들 끝에 찬란한 시간이 오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의 슬픔도 찬란한 슬픔이 되는 것이지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7113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6138
2902 개 코의 놀라운 기능 바람의종 2008.05.08 8710
2901 어머니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5.08 7107
» 찬란한 슬픔의 봄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5.09 8435
2899 내가 행복한 이유 바람의종 2008.05.13 5077
2898 부처님 말씀 / 도종환 윤영환 2008.05.14 6065
2897 편안한 마음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5.20 7352
2896 나에게 맞는 옷을 찾아라 바람의종 2008.05.22 6916
2895 로마시대의 원더랜드, ‘하드리아누스의 빌라’ 바람의종 2008.05.22 13281
2894 달을 먹다 바람의종 2008.05.22 6732
2893 지하철에서 노인을 만나면 무조건 양보하라 바람의종 2008.05.22 7510
2892 초록 꽃나무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5.23 10108
2891 오늘 다시 찾은 것은 바람의종 2008.05.26 7202
2890 매너가 경쟁력이다 바람의종 2008.05.27 5226
2889 느낌의 대상에서 이해의 대상으로? 바람의종 2008.05.27 4522
2888 가장 큰 재산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5.29 8661
2887 일상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바람의종 2008.05.31 6883
2886 폐허 이후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5.31 8181
2885 등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6.02 7880
2884 이로움과 의로움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6.07 6827
2883 촛불의 의미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6.09 7808
2882 매일 새로워지는 카피처럼 바람의종 2008.06.11 5619
2881 화려한 중세 미술의 철학적 기반 바람의종 2008.06.11 8020
2880 지금 아니면 안 되는 것 바람의종 2008.06.13 7056
2879 우산 바람의종 2008.06.19 7176
2878 목민관이 해야 할 일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6.21 713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