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2.27 01:45

박상우 <말무리반도>

조회 수 9865 추천 수 1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너, 윤곽선이 지워진 세계의 비극이 뭔지 아느냐?

뿌리를 뽑는다는 것.

그래, 잡초를 뽑으며 나는 뿌리를 뽑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십 년, 내 자신이 잡초처럼 척박한 땅에다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으니 손놀림이 모지락스러워지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닐 터였다. 그러니 잡초가 아니라 가슴에 응어리진 자기 혐오를 뽑아 내기 위해 나는 정신없이 땅을 파헤치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 스스로 뿌리를 내렸으나 내 스스로 거두지 못한 끈질긴 비관과 절망의 뿌리, 그것들은 지금 내 영혼의 어느 암층에까지 뻗어나가 있을가. 스물일곱에서 서른일곱 사이. 세월의 수레바퀴에 실려 간 꿈은 이제 아쉬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필요한 것은 적멸이 아니라 소멸, 그리고 또 다른 길을 향한 준비이거나 출발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십 년 세월 저쪽, 꿈과 무관한 길을 떠나던 시절의 기억은 부정이나 타파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것이 원하던 길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그 시절의 나를 부정하고 지금의 나를 인정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원치 않는 길을 에돌아가는 것, 그것을 통해 오히려 강화되거나 견고해질 수 있는게 꿈이라면 지금의 나를 무슨 말로 변명할수 있으랴. 꿈을 위해 꿈을 잠재우는 과정. 세상이 꿈꾸는 자의 것이라는 말은 세상이 결코 꿈꾸는 자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역으로 반영하는 말일 뿐이었다.

"인생이 극도로 불투명하게 느껴질 때가 있죠. 내가 살아온 이유와 살아갈 이유, 그런 것에 아무런 확신도 가질 수 없을 때......그러니까 혼자인 게 당연하고 혼자일 수밖에 없는 시간 같은 거요. 아마 나는 지금 그런 시간을 지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박상우  <말무리반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7194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6223
2977 친밀한 사이 風文 2023.12.29 326
2976 논산 훈련소 신병 훈련병 風文 2021.09.04 331
2975 사랑의 소유욕 때문에 風文 2019.06.19 335
2974 세상을 더 넓게 경험하라 風文 2021.10.28 337
2973 마음먹었다면 끝까지 가라 風文 2023.12.20 337
2972 삶의 모든 것은 글의 재료 風文 2023.03.04 338
2971 손바닥으로 해 가리기 風文 2023.12.28 340
2970 기억의 뒷마당 風文 2023.02.10 342
2969 '내가 김복순이여?' 風文 2024.01.03 342
2968 눈에는 눈 風文 2023.01.13 345
2967 아기의 눈으로 바라보기 風文 2023.02.22 345
2966 제자리 맴돌기 風文 2024.01.16 347
2965 'GO'와 'STOP' 사이에서 風文 2021.09.13 348
2964 분노와 원망 風文 2022.12.27 350
2963 좌뇌적 생각과 우뇌적 생각 風文 2023.02.20 350
2962 얼굴의 주름, 지혜의 주름 風文 2023.05.28 350
2961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風文 2024.01.02 350
2960 육체적인 회복 風文 2021.09.02 352
2959 가볍고 무른 오동나무 風文 2021.09.10 352
2958 꼭 필요한 세 가지 용기 風文 2021.09.13 354
2957 '다, 잘 될 거야' 風文 2021.10.28 354
2956 발끝으로 서기까지 風文 2021.09.04 357
2955 우리 삶이 올림픽이라면 風文 2023.02.25 357
2954 '의미심장', 의미가 심장에 박힌다 風文 2024.02.08 357
2953 요가 수련자의 기본자세 風文 2023.02.21 35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