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8063 추천 수 2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그 부자(父子)가 사는 법」(소설가 한창훈)   2009년 5월 20일_열일곱번째





 





굳이 콤플렉스 관련 정신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아버지와 아들은 갈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수컷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이 겹치기 때문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웃음 말고도 아버지의 존재라고 하니 (그 역사가 짧아서 그러겠지만) 부자간의 갈등과 경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한 아버지가 있다.


그는 어부이다. 이른 새벽 어장을 나가기 위해서는 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들은 술에 취해 늦게 들어왔다. 깨우긴 했는데 병든 닭처럼 꾸벅거리고 있는 몰골을 보고 있자니 화가 솟구친다. 하지만 한바탕 해 버리면 어장은 파산이다. 꾹 누르며 평소에 준비해 둔 말을 내뱉는다.   


“이런 말 너도 들어 봤을 것이다.”


무슨 소리냐며 아들은 고개를 든다. 눈은 아예 떠지지 않는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는 말 말이다. 먹고살려면 새고 사람이고 모두 부지런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들은 그 상태로 답한다.


“그럼 그 벌레는요?”


“......”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잡아먹힌 벌레는요?”


“이 자식아, 그 벌레는 너처럼 술 퍼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놈이야. 그러니까 잡아먹히지.”


아들은 비로소 눈을 슬며시 뜬다.


“그럼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새도 벌레를 잡아먹을 수 있겠네요?”


아버지는 기가 찬다.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대응이 궁하다. 속만 끓어오른다. 교육의 창이 막힌 것이다. 한동안 이를 물고 있던 아버지는 소주병을 열고 밥그릇 가득 술을 부어 준다.


“오냐, 술이 그리 좋다면 이 애비가 직접 따라 주마. 그동안 한잔도 못 준 거 한꺼번에 주는 것이니까 시원하게 마셔라.”


기세로 밀어붙이는 방법이 남았던 것이다. 숙취에 끙끙거리는데 어떻게 그 많은 소주를 마실 것인가. 잘못했습니다, 소리가 나오기를 아버지는 기다린다. 그런데 아들은 한동안 술 찰랑거리는 그릇을 바라보다가 정 그러시다면, 하고는 마신다. 아버지는 숨이 콱 막힌다. 사약 먹듯 간신히 들이킨 아들은


“저도 그동안 진심으로 술 한잔 못 올렸습니다, 사과드리는 의미에서 저도 한잔 올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아버지 앞에 찰랑거리는 술사발이 놓인다. 자존심이 있지. 아버지는 마신다. 그리고 쓰러진다. 결국 아들이 아버지를 업다시피 하고 바다로 어장을 나간다.


 


협력의 전제조건은 갈등이다. 갈등이 소박한가 아닌가가 문제이다.  


 














■ 필자 소개


 




한창훈 (소설가)


1963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가던 새 본다』『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청춘가를 불러요』가 있다. 산문소설 『바다도 가끔은 섬의 그림자를 들여다 본다』와 장편소설『홍합』『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열 여섯의 섬』등이 있다. 동화 『검은섬의 전설』과 공동 산문집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를 펴냈다. 제3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6051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4992
2552 나의 길, 새로운 길 風文 2023.05.31 545
2551 지혜를 얻는 3가지 방법 風文 2019.08.26 546
2550 '자발적인 노예' 風文 2019.08.15 547
2549 똑같은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요청하라 風文 2022.10.07 547
2548 서른 살부터 마흔 살까지 風文 2019.08.12 548
2547 너무 오랜 시간 風文 2019.08.13 549
2546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9.3.미트라 風文 2023.11.24 549
2545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5. 궁극의 사건 風文 2020.05.31 550
2544 사랑을 잃고 나서... 風文 2022.01.13 550
2543 머나먼 여행을 떠났다 돌아왔다 風文 2022.05.09 550
2542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10. 가치 風文 2020.06.05 551
2541 살아야 할 이유 風文 2019.08.29 553
2540 살아 있는 글쓰기 風文 2023.08.11 553
2539 마음의 감옥 風文 2019.08.14 554
2538 곰팡이가 핀 '작은 빵 네 조각' 風文 2019.08.17 554
2537 나를 넘어서는 도전 정신 風文 2023.01.14 554
2536 나의 미래 風文 2019.08.21 555
2535 '정말 이게 꼭 필요한가?' 風文 2020.05.05 555
2534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11. 평범성 風文 2020.06.06 555
2533 사람들이랑 어울려봐요 風文 2022.05.16 555
2532 '평생 교육'이 필요한 이유 風文 2022.05.18 555
2531 타인이 잘 되게 하라 風文 2022.05.23 555
2530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해주셨던 말 風文 2023.04.19 555
2529 균형 風文 2019.09.02 556
2528 '일을 위한 건강' 風文 2022.02.10 55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