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8807 추천 수 1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자작나무 - 도종환

북유럽이나 눈이 많이 내리는 추운 지방에서는 자작나무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껍질이 희고 옆으로 얇게 벗겨지며 키가 큰 나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부 이북의 깊은 숲에서 자라는 나무입니다. 자작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추운 삼림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내성적이고 과묵하다고 합니다. 자작나무 숲은 보기에는 좋지만 너무 추워서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수렵어로로 어렵게 생활을 이어가던 습성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고독과 사적 자유를 즐기고 술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든 서두르지 않으며 타인과도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산다고 합니다.
저도 언젠가 자작나무를 보며 이런 시를 쓴 적이 있습니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추운 데서 자랐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맑지만 창백한 모습이었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꽃은 제대로 피우지 못하면서
꿈의 키만 높게 키웠다
내가 자라던 곳에는 어려서부터 바람이 차게 불고
나이 들어서도 눈보라 심했다
그러나 눈보라 북서풍 아니었다면
곧고 맑은 나무로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몸짓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외롭고 깊은 곳에 살면서도
혼자 있을 때보다 숲이 되어 있을 때
더 아름다운 나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졸시 「자작나무」전문

저는 자작나무를 보면서 희고 맑은 빛깔의 나무지만 한편으론 창백한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꽃은 제대로 피우지 못하면서 꿈의 키만 높게 키운 나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 모습이 나와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추운 데서 자란 모습이 저하고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작나무는 눈보라와 북서풍이 아니었다면 희고 곧고 맑은 나무로 자라지 못했을 겁니다. 사는 동안 내내 그치지 않던 추위와 혹독한 환경 때문에 그렇게 아름다운 나무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소나무처럼 독야청청하기보다 옆의 나무를 찾아가 숲을 이루고 있을 때 자작나무는 더 아름답습니다.

자작나무가 많은 북유럽의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도 겉으로 보면 말이 없고 폐쇄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이 깊다고 합니다. 수다를 떨거나 호들갑스럽지 않은 대신 성격이 차분하다고 합니다. 허세를 부리거나 자신을 과장하지 않고 정직하다고 합니다. 지리적 환경적 영향으로 끈기가 있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 정신력을 지니고 있으며, 자립심과 독립심이 강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을 감고 눈이 가득 쌓인 숲속의 눈부시게 희디흰 자작나무들을 생각합니다. 이 겨울, 고독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그 고독과 추위 속에서 안으로 깊어져 가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도종환 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6398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5435
2652 가을엽서 - 도종환 (73) 바람의종 2008.09.24 7045
2651 가을이 떠나려합니다 風文 2014.12.03 8036
2650 가장 강한 힘 바람의종 2010.01.23 5439
2649 가장 놀라운 기적 風文 2024.05.10 5
2648 가장 빛나는 별 바람의종 2012.07.23 6797
2647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잘 안다 바람의종 2009.07.01 5239
2646 가장 생각하기 좋은 속도 風文 2022.02.08 597
2645 가장 쉬운 불면증 치유법 風文 2023.12.05 355
2644 가장 작은 소리, 더 작은 소리 바람의종 2012.10.30 8114
2643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렸다 風文 2015.01.14 6841
2642 가장 큰 실수 風文 2015.02.17 7043
2641 가장 큰 재산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5.29 8646
2640 가장 큰 죄 바람의종 2011.11.02 4071
2639 가장 행복하다고 느낄 때 바람의종 2008.10.04 7263
2638 가족 문제는 가족 안에서 바람의종 2011.01.30 4110
2637 가족간의 상처 風文 2019.08.14 539
2636 가족이란... 風文 2015.06.29 5186
2635 가치있는 삶, 아름다운 삶 風文 2015.06.28 6194
2634 각각의 음이 모여 바람의종 2008.10.07 7689
2633 간디의 튼튼한 체력의 비결 風文 2022.02.24 656
2632 간이역 바람의종 2009.09.18 4907
2631 간절하지 않으면 꿈꾸지 마라 윤안젤로 2013.03.13 8917
2630 간절한 기도 바람의종 2010.06.02 4541
2629 갈팡질팡하지 말고... 바람의종 2010.11.18 3845
2628 감각을 살려라 風文 2014.10.14 1143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