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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3」(소설가 정영문)   2009년 6월 24일_마흔한번째





 





나는 부엉이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죽은 폴리와 몰리를 생각했다. 폴리와 몰리는 한때 내가 함께 살았던 여자가 키우던 새였다. 폴리와 몰리는 앵무새였다. 폴리는 수컷이었고, 몰리는 암컷이었다. 폴리는 벙어리였고, 몰리는 수다쟁이였다. 폴리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었고, 몰리는 모든 것에 관심이 있었다. 둘은 다소 특이한 성격이었다. 폴리는 아무 말 없이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습관이 있었고, 몰리는 툭하면 십자가에 입을 맞춘 후 머리를 움직여 성호를 긋는 버릇이 있었다. 그녀가 몰리에게, 십자가에 입을 맞추고 성호를 그어야지, 하고 말하면 몰리는 기다렸다는 듯 그렇게 했다. 폴리와 몰리의 관계는 그저 그렇고 그랬다. 둘은 서먹했고, 서로를 무시했다. 둘은 서로의 사생활에 관심이 없었다. 그것들은 자신들이 같은 앵무새라는 것도 잊은 듯 보였다. 나의 그녀는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몰리를 좀 더 편애했다. 폴리는 늘 기운이 없었고, 그녀의 빨간 구두를 유난히 좋아했다. 이 세상은 폴리가 살기에게는 너무 힘든 곳이었고, 그래서 폴리는 그녀의 빨간 구두 속에 머리를 집어넣은 채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몰리는 가끔, 도망쳐 폴리, 하고 말하곤 했다. 그것은 누구를 향해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 몰리는 가끔 혼잣말을 했다. 일요일에 성당에 다녀와 기분이 좋아진 그녀가 성당에서 부르던 노래를 또다시 부른 후 몰리를 빤히 쳐다보며 몰리에게, 어떻게 생각해, 네 생각을 말해봐, 너도 생각을 한다는 것을 보여 봐, 하고 말하면 몰리는 잠시 생각 끝에, 미친년, 하고 말했다. 그럴 때면 그녀는 몹시 기분이 좋아져 몰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일요일에만 성당을 가는 그녀는 시간이 날 때면 십자수를 뜨곤 했다.


 


폴리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거실 벽의 괘종 소리를 무척 좋아했다. 괘종 소리는 둔중하게, 그리고 길게 울렸다. 매 시간 종이 울리면 폴리는 하던 일을 멈추고, 별로 하는 일도 없긴 했지만, 거실로 가 괘종시계를 바라보며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폴리는 자정이 되어 괘종이 열두 번 울릴 때를 가장 좋아했다. 하지만 모든 점에서 폴리와는 달랐던 몰리는 괘종 소리에는 무심했다. 몰리는 괘종 소리가 지루하게 이어질 때면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한숨을 쉬는 것 같은 얼굴로 괘종시계를 바라보았다.


 


폴리와 몰리의 비극은 빨간 구두의 주인인 그녀가 어느 일요일 성당에 갔다 온 후 그녀의 구두를 폴리가 물어뜯은 후 시작되었다. 화가 난 그녀는 폴리를 때렸고, 늘 온순했던 폴리는 갑자기 그녀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발등을 쪼아 피가 나게 했다. 그에 질세라 그녀는 폴리에게 달려들어 폴리의 목을 졸랐고, 그런 다음 폴리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사이 그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몰리의 목 또한 졸랐다. 폴리와 몰리는 잠시 발버둥을 쳤지만 그것으로 다였다. 폴리는 벌을 받아 마땅한 짓을 한 후 벌을 받았지만 몰리에게 그것은 억울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상관없는 일이었다. 죽은 후 폴리는 침대 위에, 몰리는 창턱에 누워 한동안 천장과 바깥을 바라보며 있었다. 폴리는 죽어서도 기운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그들을 죽인 것을 후회했고, 자신의 잘못을 깊이 누우치는 사람처럼 그들을 침대와 창턱 위에 올려놓고 침대맡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하룻밤을 샜다. 그녀는 생전의 몰리처럼, 내가 잘못 생각했어, 이 모든 건 생각의 잘못으로 돌릴 수 있는 일이야, 하고 혼잣말을 했다. 그녀는 폴리와 몰리가 살아나 자신의 구두를 좋아하고, 십자가에 입을 맞추고 성호를 긋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었다. 나는 단 한 번 용감한 짓을 한 폴리와 억울하게 죽은 몰리를 생각하며 부엉이의 노래 소리를 들었다.

















■ 필자 소개


 




정영문(소설가)


1963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1996년 <작가세계> 겨울호에 실린 장편소설『겨우 존재하는 인간』으로 문단에 등단했으며, 1999년 제12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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