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7126 추천 수 2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입을 여는 나무들 / 도종환




나뭇가지에 어린잎이 막 새 순을 내미는 모습은 참 예쁩니다. 예쁘다는 표현보다는 앙증맞다고 해야 어울릴 것 같습니다. 어린 새의 부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펜촉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제 막 연초록의 부리를 내미는 어린잎들이 무어라고 재잘댈 것 같기도 하고, 저마다 사월 하늘에 푸른 글씨를 쓸 것도 같습니다. 신달자 시인은 그것을 나무들이 몸의 입을 열기 시작했다고 표현합니다.
  
  
"어린 말씀들이 돋기 시작했다 / 나무들이 긴 침묵의 겨울 끝에 / 몸의 입을 열기 시작했었다 / 바람이 몇 차례 찬양의 송가를 높이고 / 봄비가 낮게 오늘의 독서를 읽고 지나가면 / 누가 막을 수 없게 / 말씀들은 성큼 자라나 잎 마다 성지를 이루었다 / 결빙의 겨울을 건너 부활한 성가족 / 의 푸른 몸들이 넓게 하늘을 받는다 / 잎마다 하늘 하나씩을 배었는지 너무 진하다 / 말씀 뚝뚝 떨어진다"
  ---「녹음미사」중에서

  
  봄 숲에 봄비가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성당에서 성서를 읽는 독서의 소리라고 생각하고, 나무마다 어린 나뭇잎이 돋아나는 모습을 "결빙의 겨울을 건너 부활한 성가족"이라고 말합니다. 새로 돋는 나뭇잎에서 부활을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봄숲에서 나뭇잎이 자라나는 모습을 "장엄한 녹음미사"라고 상상합니다.
  
  사월 나뭇잎에서 가톨릭의 미사를 떠올리는 종교적 상상도 아름답지만 부활이 그냥 오는 게 아니라 봄비처럼 쏟아지는 통회의 눈물, 통성기도의 후끈한 고백성사를 거친 뒤에 오는 것이라는 그 말씀 또한 아름답습니다. 나뭇잎들이 그렇게 부활하며 다시 태어나듯 우리도 이 사월 새롭게 태어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Date2023.02.04 By風文 Views4426
    read more
  2. 친구야 너는 아니

    Date2015.08.20 By風文 Views93267
    read more
  3. 이거 있으세요?

    Date2008.03.19 By바람의종 Views8101
    Read More
  4. 소금과 호수

    Date2008.03.18 By바람의종 Views7508
    Read More
  5. 노인과 여인

    Date2008.03.16 By바람의종 Views6476
    Read More
  6. 신종사기

    Date2008.02.15 By바람의종 Views7174
    Read More
  7. solomoon 의 잃어버린 사랑을 위하여(17대 대선 특별판)

    Date2007.12.20 By바람의종 Views8079
    Read More
  8.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

    Date2007.09.04 By바람의 소리 Views6753
    Read More
  9. 찬란한 슬픔의 봄 / 도종환

    Date2008.05.09 By바람의종 Views8358
    Read More
  10. 어머니 / 도종환

    Date2008.05.08 By바람의종 Views7086
    Read More
  11. 어린이라는 패러다임 / 도종환

    Date2008.05.05 By바람의종 Views6357
    Read More
  12. 젖은 꽃잎 / 도종환

    Date2008.05.02 By바람의종 Views9458
    Read More
  13. 만족과 불만 / 도종환

    Date2008.04.30 By바람의종 Views5326
    Read More
  14. 하나의 가치

    Date2008.04.29 By바람의종 Views6767
    Read More
  15. 참는다는 것 / 도종환

    Date2008.04.28 By바람의종 Views8374
    Read More
  16. 입을 여는 나무들 / 도종환

    Date2008.04.25 By바람의종 Views7126
    Read More
  17. 섬기고 공경할 사람 / 도종환

    Date2008.04.24 By바람의종 Views6895
    Read More
  18. 용연향과 사람의 향기 / 도종환

    Date2008.04.21 By바람의종 Views9247
    Read More
  19. 산벚나무 / 도종환

    Date2008.04.18 By바람의종 Views12902
    Read More
  20. 자족에 이르는 길 / 도종환

    Date2008.04.16 By바람의종 Views6695
    Read More
  21. 네비게이션에 없는 길 / 도종환

    Date2008.04.14 By바람의종 Views6939
    Read More
  22. 냉이꽃 한 송이도 제 속에서 거듭 납니다

    Date2008.04.11 By바람의종 Views6647
    Read More
  23. 4월 이야기

    Date2008.04.10 By바람의종 Views9806
    Read More
  24. 화개 벚꽃 / 도종환

    Date2008.04.09 By바람의종 Views8291
    Read More
  25. 다리가 없는 새가 살았다고 한다.

    Date2008.04.05 By바람의종 Views8711
    Read More
  26. 달을 먹다

    Date2008.05.22 By바람의종 Views6702
    Read More
  27. 편안한 마음 / 도종환

    Date2008.05.20 By바람의종 Views7331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119 120 121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