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276 추천 수 2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생각의 집부터 지어라








 설계를 의뢰하려는 이들 중에는 ‘구름 같은 집’의 겉모양에 집착하거나, 집을 지을까 말까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정작 설계는 초스피드로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이야말로 집을 지을 마음의 준비가 부족한 사람들이다. 집을 잘 지으려면 무엇보다 생각부터 잘 지어야 하는데, 밑바탕도 없이 대뜸 그림부터 그리려는 조급함이 여간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좋은 설계를 하는 데 있어 소요 공간의 기능이나 면적 등도 중요한 필요조건이지만 비껴가서는 안 될 본질적인 물음들이 있다. 이를테면, ‘집은 왜 지으려 하는가?’, ‘집을 지어서 무엇을 얻으려(즐기려) 하는가?’등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그들이 평소 갖고 있는 집에 대한 생각들을 살펴보기 위해 소설가 유진오의 《창랑정기》나 법정 스님의 《텅 빈 충만》, 또는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같은 작품들을 읽어 보았는지 슬며시 묻곤 한다. 물론 읽어 보지 않았다면 반드시 일독을 권하면서, 이들 작품을 예로 들어 구체적으로 집의 진면목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며 제대로 된 집을 위해 어떠한 개념이 필요한지를 내 식대로 풀이해 드리곤 한다. 그렇게 문학을 화두로 삼아 ‘사유의 집’을 함께 그리다 보면 서로의 인연이 어디까지일지를 대략 가늠하게 된다. 문학적인 상상력이 바탕이 되어 다소나마 정서적인 교감이 오고가는 경우라야 일을 함께 할 만하다고 보는 것이 내 나름의 일감 선택 방식이다. 


 수많은 문학 텍스트가 여실히 증거하고 있듯이 집을 제대로 짓는다 함은 하늘과 땅과 사람 사이의 소중한 인연을 잘 보듬어 이어가고자 함이다. 또한 집을 굳건히 일으켜 세운다 함은 단순히 아름다운 모양이나 풍광만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 스며들 정신을 구축해 내는 것인 동시에 집주인의 자화상(인품)을 곧바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설계에 뜸을 들여가며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사유의 집 짓기는 집의 뼈대를 튼튼하게 하기 위한 기초공사나 다름없다. 생각이 부실하면 집 짓기는 형태의 유희로 끝날 공산이 크다. 집 모양이야 건축가에게 맡기더라도 사유의 텃밭만큼은 집주인도 함께 일구어야 한다. 문학적 상상력으로 대지 위에 ‘사유의 집’을 짓는 것! 그것이 바로 건축의 기본이요 출발이다.


김억중 님 | 건축가 , 한남대 교수
-《행복한동행》2008년 7월호 중에서


  1.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Date2023.02.04 By風文 Views4359
    read more
  2. 친구야 너는 아니

    Date2015.08.20 By風文 Views93202
    read more
  3. 세계 최초의 아나키스트 정당을 세운 한국의 아나키스트

    Date2008.07.24 By바람의종 Views15104
    Read More
  4. 역설의 진리 - 도종환

    Date2008.07.21 By바람의종 Views7410
    Read More
  5. 독도 - 도종환

    Date2008.07.21 By바람의종 Views6809
    Read More
  6. 모기 이야기 - 도종환

    Date2008.07.21 By바람의종 Views8209
    Read More
  7. 좋은 사람 - 도종환

    Date2008.07.21 By바람의종 Views7795
    Read More
  8. 유쾌한 시 몇 편 - 도종환

    Date2008.07.21 By바람의종 Views8324
    Read More
  9. 희망의 바깥은 없다 - 도종환

    Date2008.07.21 By바람의종 Views10154
    Read More
  10. 임숙영의 책문 - 도종환

    Date2008.07.21 By바람의종 Views6935
    Read More
  11. 평화의 촛불 - 도종환

    Date2008.07.21 By바람의종 Views6977
    Read More
  12. 개울과 바다 - 도종환

    Date2008.07.21 By바람의종 Views9121
    Read More
  13. 창의적인 사람 - 도종환

    Date2008.07.21 By바람의종 Views8204
    Read More
  14. 권력의 꽃 - 도종환

    Date2008.07.21 By바람의종 Views10902
    Read More
  15. 온화한 힘 - 도종환

    Date2008.07.21 By바람의종 Views6523
    Read More
  16. 물음표와 느낌표

    Date2008.07.21 By바람의종 Views7640
    Read More
  17. 용서

    Date2008.07.19 By바람의종 Views6477
    Read More
  18. 사과

    Date2008.07.18 By바람의종 Views6398
    Read More
  19. 벌주기

    Date2008.07.16 By바람의종 Views6246
    Read More
  20. 생각의 집부터 지어라

    Date2008.07.12 By바람의종 Views6276
    Read More
  21. 왕이시여, 어찌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Date2008.07.09 By바람의종 Views8019
    Read More
  22. 후배 직원을 가족같이 사랑하라

    Date2008.07.09 By바람의종 Views6821
    Read More
  23. 이장님댁 밥통 외등

    Date2008.07.04 By바람의종 Views8763
    Read More
  24. 얼굴빛

    Date2008.07.03 By바람의종 Views6441
    Read More
  25. 雨中에 더욱 붉게 피는 꽃을 보며

    Date2008.07.01 By바람의종 Views7699
    Read More
  26. 빈 병 가득했던 시절

    Date2008.06.27 By바람의종 Views5953
    Read More
  27. 그 시절 내게 용기를 준 사람

    Date2008.06.24 By바람의종 Views7625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119 120 121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