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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때 미술선생님은 방학숙제로 화가의 그림을 모아오는 숙제를 내주셨습니다. 나는 미술반에 들어가 활동했기 때문에 다른 과목보다 미술숙제를 더 잘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네의 수련그림, 밀레의 고전적인 그림, 르노아르의 우아한 그림, 고갱이 그린 타이티의 여인들, 쿠르베의 사실적인 그림, 거기다 자코메티의 조각품 사진까지 열심히 모아 스크랩하며 숙제를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고흐와 고갱의 그림이 좋았습니다. 고흐의 그림은 해바라기와 자화상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해바라기의 그 강렬한 노란빛과 온통 빨간 화폭을 채우고 있는 자화상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고흐의 그림에는 꿈틀거리는 어떤 것이 있어서 마음이 끌렸고, 고갱의 그림에는 원색의 생명력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문학청년기에는 고갱보다 고흐의 삶에 매료되었습니다. 예술을 향한 그의 광기, 예술적 신념을 위해서는 귀라도 자를 수 있는 거침없는 행동, 그리고 자살로 마감하는 생이 술 마시게 했습니다. 그러나 꿈틀거리는 붓질이 그의 뿌리 깊은 고뇌를 표현하고 있는 것인 줄 그때는 몰랐습니다. 낭만도 아니고 단순한 우울도 아닌 격렬하고 깊은 고뇌가 겉으로는 거칠게 보이는 것뿐이었습니다. 감정을 절실하게 전달하고자 노력한 것이 거칠게 표출되고 있을 뿐이라고 고흐는 말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보잘 것 없는 사람, 괴벽스러운 사람,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 사회적 지위도 없고 앞으로도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갖지도 못할, 한 마디로 최하 중의 최하급 사람… … . 그래, 좋다. 설령 그 말이 옳다 해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통해 그런 기이한 사람, 그런 보잘 것 없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여주겠다.
  
  그것이 나의 야망이다. 이 야망은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원한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왔고, 열정이 아니라 평온한 느낌에 기반을 두고 있다."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고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흐는 당시 다른 사람들 눈에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살아서 겨우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한 화가입니다. 괴벽스럽고 아무런 사회적 지위도 갖지 못한 이 화가의 가슴 속에 세계 미술사를 바꿀 뜨거운 영혼이 들어 있는 줄 아는 이는 많지 않았습니다. 자기 가슴 속에 들어 있는 뜨거운 예술혼을 보여주고 싶어 한 이 야망은 원한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왔다고 고흐는 말합니다.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원한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온 야망, 단순한 열정만이 아니라 평온한 느낌에 기반을 둔 야망이었습니다.
  
  고흐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며 살았지만 자기 안에는 평온함, 순수한 조화, 그리고 음악이 존재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광기가 그의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게 하는 말입니다. 꼭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이런 야망 하나 가슴에 품고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도종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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