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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1 12:07

빛깔 - 도종환 (64)

조회 수 6564 추천 수 1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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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산 옆을 지나가면서 산 아래를 끼고 흐르는 강줄기를 바라보면 눈에 띄는 게 있습니다. 큰 강물이든 작은 여울이든 푸른 나무들이 모여 이룬 숲 근처의 물빛은 나뭇잎을 닮아서인지 나뭇잎 빛깔입니다. 늘 하늘을 누워 보면서 흐르는 바닷물은 아마 하늘을 닮아 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볼 때도 있습니다. 하늘처럼 넓은 고통, 하늘처럼 깊고 적막한 슬픔을 가까이 보면서 깊어졌기 때문에 하늘을 닮아 하늘과 같은 빛깔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
  
  살굿빛 저녁노을을 안고 흐르는 저녁 강물도 노을빛을 닮아 흐르게 마련인 것처럼 사람도 자연도 저마다의 빛깔을 지니고 있습니다. 살면서 느끼는 거지만 봄에는 봄의 빛깔이 있고 여름에는 여름의 빛깔이 있습니다. 겨울 지등산은 지등산의 빛깔을 지닌 채 육중하게 앉아 있고 가을 달래강은 달래강의 빛깔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얼굴과 표정과 목소리 속에 모두 저마다 제 빛깔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가 살아온 삶, 그의 인생관, 그의 성격이 얼굴 모습과 목소리 속에 고여 있음을 만나는 사람들마다 느낄 수 있습니다. 잿빛 승복을 입고 고개를 넘어가는 스님의 뒷모습에 어리는 구름의 빛깔은 세속의 욕망을 담담하게 접어 두고 깊어 가는 한 인간의 영혼의 색조를 느끼게 합니다.
  
  차분한 목소리, 담백한 표정의 사람과 마주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의 마음이 그를 따라 작설차 향내가 감도는 경험을 갖는 때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지금 무슨 빛깔 무슨 향내로 살고 있을까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의 물빛처럼 검게 일그러져 있는 때가 더 많지는 않은지요? 많은 날 많은 시간 우리는 자꾸 자신의 본래 모습, 본래의 빛깔로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려고 괴로워해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티 없는 새 소리 맑은 바람 소리를 들으며 자란 나뭇잎의 빛깔이 진짜 푸른빛을 지니고 있듯이, 어려서부터 나뭇잎의 진녹색 빛깔 속에서 때 묻지 않은 바람 소리를 들으며 목소리를 키워 온 새 소리가 진짜 맑은 소리를 내듯이, 우리도 그렇게 우리의 빛깔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우리의 목소리를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도종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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