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들은 꽃을 자라게 할 뿐, 소유하려 하지 않습니다


봄이 오면 들은 많은 꽃을 피웁니다. 그 언덕에 크고 작은 많은 꽃들이 피게 합니다. 냉이꽃, 꽃다지, 제비꽃, 할미꽃, 노랑민들레가 다투어 피어나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꽃들이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다 내어 줍니다. 계절이 바뀌고 새로운 꽃들이 다시 피고 지는 동안 들은 그 꽃들을 마음껏 자라게 할 뿐 소유하려 하지 않습니다. 소유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많은 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강물은 흘러오는 만큼 흘려보냅니다. 그래서 늘 새롭고 신선할 수 있습니다. 제 것으로 가두어 두려는 욕심이 앞서면 물은 썩게 됩니다. 강물은 제 속에 많은 물고기들이 모여 살게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게 할 뿐 소유하지 않습니다.

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그늘로 찾아와 둥지를 틀고 깃들어 살게 할 뿐 소유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산은 늘 풍요롭습니다. 산짐승들이 모여들고 온갖 나무들이 거기에 뿌리를 내리게 합니다. 그것들이 모여와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산이 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새들이 마음껏 날개 치게 하는 하늘은 더욱 그렇습니다. 수많은 철새들의 길이 되어주고 자유로운 삶터가 되어 줄 뿐 단 한 마리도 제 것으로 묶어 두지 않습니다. 새들의 발자국 하나 훔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늘은 더욱 넓고 푸릅니다.

'생이불유(生而不有)' 『노자』에서는 이런 모습을 "천지와 자연은 만물을 활동하게 하고도 그 노고를 사양하지 않으며, 만물을 생육하게 하고도 소유하지 않는다" 하여 '생이불유(生而不有)' 라 합니다.

진흙을 이겨서 질그릇을 만들지만 그 안을 비워두기 때문에 그릇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릇의 안이 진흙으로 꽉 차 있다면 그 그릇은 아무것도 담을 수 없고 이미 그릇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진흙덩어리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사람이 그릇이 커야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큰 그릇이 될 사람이다.' 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도량이 크고 마음이 넓다는 뜻인데 다른 사람을 품어 안고 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넓으려면 마음이 비어 있어야 합니다.

집을 짓고 방을 만들 때 그 내부를 비워둠으로 해서 방으로 쓸 수 있는 것처럼 비워둠으로 해서 비로소 가득 차게 할 수 있는 이 진리. 이 무한한 크기. 사람의 마음도 삶도 비울 줄 알 때 진정으로 크게 채워지는 것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도종환 시인


  1.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Date2023.02.04 By風文 Views5141
    read more
  2. 친구야 너는 아니

    Date2015.08.20 By風文 Views93976
    read more
  3.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바라보기"

    Date2009.04.13 By바람의종 Views7047
    Read More
  4. 못생긴 얼굴

    Date2009.04.13 By바람의종 Views6483
    Read More
  5. 손을 놓아줘라

    Date2009.04.13 By바람의종 Views5582
    Read More
  6. 젊음의 특권

    Date2009.04.13 By바람의종 Views8456
    Read More
  7. 계란말이 도시락 반찬

    Date2009.04.09 By바람의종 Views6705
    Read More
  8. 내면의 어른

    Date2009.04.09 By바람의종 Views5845
    Read More
  9. 나를 돕는 친구

    Date2009.04.09 By바람의종 Views6974
    Read More
  10. 불타는 열정

    Date2009.04.09 By바람의종 Views4688
    Read More
  11. "영원히 변하지 않는 영혼은 있는가?"

    Date2009.04.03 By바람의종 Views8421
    Read More
  12. 엄마의 일생

    Date2009.04.03 By바람의종 Views4802
    Read More
  13. 아름다운 욕심

    Date2009.04.03 By바람의종 Views4756
    Read More
  14. 네 안의 거인을 깨워라

    Date2009.04.03 By바람의종 Views6857
    Read More
  15. "'거룩한' 바보가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Date2009.03.31 By바람의종 Views10865
    Read More
  16. 몸이 아프면

    Date2009.03.31 By바람의종 Views5569
    Read More
  17. 생각의 산파

    Date2009.03.30 By바람의종 Views5722
    Read More
  18. 내 서른살은 어디로 갔나

    Date2009.03.29 By바람의종 Views5977
    Read More
  19. 모과꽃 - 도종환 (148 - 끝.)

    Date2009.03.29 By바람의종 Views6652
    Read More
  20. 자기 비하

    Date2009.03.27 By바람의종 Views6409
    Read More
  21. 사랑하다 헤어질 때

    Date2009.03.26 By바람의종 Views5411
    Read More
  22. 들은 꽃을 자라게 할 뿐, 소유하려 하지 않습니다 - 도종환 (147)

    Date2009.03.26 By바람의종 Views5042
    Read More
  23. 사람이 항상 고상할 필요는 없다

    Date2009.03.25 By바람의종 Views5459
    Read More
  24. 2도 변화

    Date2009.03.24 By바람의종 Views7125
    Read More
  25. 고맙고 대견한 꽃 - 도종환 (146)

    Date2009.03.23 By바람의종 Views6864
    Read More
  26. 꽃소식 - 도종환 (145)

    Date2009.03.23 By바람의종 Views6047
    Read More
  27. 점심시간에는 산책을 나가라

    Date2009.03.23 By바람의종 Views6893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97 98 99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