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681 추천 수 1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똥개의 노래」(소설가 김종광)   2009년 6월 9일_서른번째





 





그 똥개는 그 고장의 들개 두목으로서 오랜 세월을 군림했다. 인간들과 싸우느라 스트레스가 많았다. 호구산 꼭대기에 올라 노래로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그 개의 주인이었던 여자가 ‘똥개의 노래’라면서 지어 준 노래가 있다. 조용필이라는 인간 가수가 부른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노(래)가(사)바(꾸기)’한 것이라고 했다. 똥개는 그 노래가 마음에 들었다. 그 노래를 부르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머리가 맑아졌다. 한 번을 부르더라도 온 생애를 다하여 불렀다. 부르고 나면 마음에 웃음이 가득 차올랐다.


 


존엄을 지키기 위해 정상에 선 똥개를 본 일이 있는가? 인간과 끝없이 투쟁하는 호구산의 똥개! 나는 똥개가 아니라 천연기념물 개이고 싶다. 어디에서나 대접받는 태평천국의 그 천연기념물이고 싶다. 싸우면서 위대해지고 지도하면서 강건해지는 나는 지금, 호구산의 제일 꼭대기에서 울고 있다. 살의 찬 인간의 그 불빛, 어디에도 개는 없다. 이 큰 인간세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살아남으니 부끄럽도다! 나보다 먼저 죽은 똥개들의 피가 마르지도 않았다! 바람처럼 왔다가 보신탕으로 갈 순 없잖아! 우리 개들이 산 흔적일랑 남겨 둬야지. 갈비 수육으로 가뭇없이 먹혀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싸우려고 애썼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똥개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개로 사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 때 개로 사는 것을 위안해 줄 아무것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건 우리 개들의 투쟁 때문이다! 투쟁이 똥개들을 얼마나 개답게 만드는지 인간들은 모르지. 투쟁만큼 개가 위대해진다는 걸 모르지. 인간들은 개고기를 사랑한다고 했다. 우리 개들은 사람고기를 먹지 않는다. 인간들은 보신탕을 사랑한다고 했다. 우리 개들은 사람탕을 본 적도 없다. 인간들은 애완견을 사랑한다고 했다. 우리 똥개들도 애완견처럼 사랑받고 싶다. 그리고 또 우리 개들은 사랑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우리들의 이념! 애완견과 똥개를 차별하지 마라! 모든 개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라!


 


투쟁이 살벌한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 것을 거니까 살벌한 거야! 투쟁도 사랑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 건 살벌한 거야! 투쟁이란 실패가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 모두를 잃어도 투쟁은 후회 않는 것, 그래야 투쟁했다 할 수 있겠지.


 


아무리 강고한 인간세상이라 할지라도 나는 한 마리 똥개로 남으리. 인간만 활개 치는 땅일지라도 나는 한 가닥 불타는 똥개가 되리. 인간의 군홧발이 초목을 휩쓸어도 꺾이지 않는 한 마리 똥개 되리. 우리 개들이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우리 개를 원했기 때문이야! 공존인가 전쟁인가 저 많은 인간들! 최후까지 우리 똥개는 가리! 이빨을 곧추세우고, 길에서 만나는 동지와 악수하며, 최후까지 싸우다 죽는 넋이 되리!














■ 필자 소개


 




김종광(소설가)


1971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1998년 계간 《문학동네》에 단편 소설 「경찰서여, 안녕」이, 2000년 《중앙일보》신춘문예에 희곡 「해로가」가 각각 당선되었다. 소설집으로 『경찰서여, 안녕』『모내기 블루스』『짬뽕과 소주의 힘』『낙서문학사』가 있으며, 장편 소설로는 『71년생 다인이』『야살쟁이록』이 있다. 대산창작기금, 신동엽창작상을 받았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4232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3616
2185 상처는 희망이 되어 風文 2015.01.14 6819
2184 직관 바람의종 2009.05.08 6815
2183 달을 먹다 바람의종 2008.05.22 6812
2182 그 무기를 내가 들 수 있는가? 風文 2015.02.15 6812
2181 레볼루션 風文 2014.12.13 6810
2180 이런 사람과 사랑하세요 바람의종 2009.02.21 6797
2179 「호세, 그라시아스!」(소설가 함정임) 바람의종 2009.06.22 6793
2178 오늘 風文 2014.12.13 6792
2177 베토벤의 산책 風文 2015.02.17 6788
2176 들꽃 나리 . 2007.06.26 6777
2175 어머니의 사재기 바람의종 2007.04.13 6774
2174 행복을 만드는 언어 風文 2015.02.09 6772
2173 맑고 좋은 생각으로 여는 하루 바람의종 2007.06.05 6769
2172 질문의 즐거움 바람의종 2009.07.27 6766
2171 건강과 행복 風文 2015.02.14 6762
2170 인생은 서로 고마워서 산다 바람의종 2007.12.18 6761
2169 새로운 곳으로 떠나자 바람의종 2012.12.31 6758
2168 상상력 바람의종 2009.02.17 6754
2167 봄은 소리 없이 옵니다. - 도종환 (140) 바람의종 2009.03.14 6754
2166 겨울 준비 - 도종환 (104) 바람의종 2008.12.08 6752
2165 문학대중화란 - 안도현 바람의종 2008.03.15 6751
2164 영혼의 친구 바람의종 2008.11.18 6747
2163 빛깔 - 도종환 (64) 바람의종 2008.09.01 6744
2162 자신있게, 자신답게 風文 2014.12.15 6743
2161 태풍이 오면 바람의종 2009.04.30 674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