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15 14:53
가을 오후 - 도종환 (94)
조회 수 8086 추천 수 10 댓글 0
고개를 넘어오니
가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흙빛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며
서 있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느냐는 내 말에
가을은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었다
웃는 낯빛이 쓸쓸하여
풍경은 안단테 안단테로 울고
나는 가만히 가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지다
내 품에 머리를 기대오는 가을의 어깨 위에
나는 들고 있던 겉옷을 덮어주었다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도 알고 가을도 알고 있었다
늦은 가을 오후
밖에 나갔다 산방으로 돌아오는 가을 오후. 나를 가장 먼저 아는 체 하는 건 쓸쓸함입니다.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고 서 있는 가을.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는 가을. 그 가을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 안으면 가을도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집니다.
가을이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질 때마다 추녀 끝에선 풍경소리 들립니다. 그러나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는 압니다. 쓸쓸함이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는지 압니다.
이 세상에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 사람도 나무 한 그루도 내가 마주하고 선 고적한 시간도 늦게까지 남아 있는 풀꽃 한 송이도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들인지 알게 합니다.
나는 이 가을의 쓸쓸함과 만나는 시간이 좋습니다. 쓸쓸한 느낌, 쓸쓸한 맛, 쓸쓸한 풍경, 쓸쓸한 촉감이 좋습니다. 나도 쓸쓸해지고 가을도 쓸쓸해져서 가을도 나도 착해질 수밖에 없는 이 순간이 좋습니다.
가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흙빛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며
서 있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느냐는 내 말에
가을은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었다
웃는 낯빛이 쓸쓸하여
풍경은 안단테 안단테로 울고
나는 가만히 가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지다
내 품에 머리를 기대오는 가을의 어깨 위에
나는 들고 있던 겉옷을 덮어주었다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도 알고 가을도 알고 있었다
늦은 가을 오후
밖에 나갔다 산방으로 돌아오는 가을 오후. 나를 가장 먼저 아는 체 하는 건 쓸쓸함입니다.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고 서 있는 가을.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는 가을. 그 가을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 안으면 가을도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집니다.
가을이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질 때마다 추녀 끝에선 풍경소리 들립니다. 그러나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는 압니다. 쓸쓸함이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는지 압니다.
이 세상에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 사람도 나무 한 그루도 내가 마주하고 선 고적한 시간도 늦게까지 남아 있는 풀꽃 한 송이도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들인지 알게 합니다.
나는 이 가을의 쓸쓸함과 만나는 시간이 좋습니다. 쓸쓸한 느낌, 쓸쓸한 맛, 쓸쓸한 풍경, 쓸쓸한 촉감이 좋습니다. 나도 쓸쓸해지고 가을도 쓸쓸해져서 가을도 나도 착해질 수밖에 없는 이 순간이 좋습니다.
도종환/시인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 風文 | 2023.02.04 | 8143 |
공지 | 친구야 너는 아니 1 | 風文 | 2015.08.20 | 97312 |
2752 | 도롱뇽의 친구들께 | 바람의종 | 2008.11.11 | 4709 |
2751 | 놀이 | 바람의종 | 2008.11.11 | 4894 |
2750 | 나는 용기를 선택하겠다 | 바람의종 | 2008.11.11 | 5341 |
2749 | 뚜껑을 열자! | 바람의종 | 2008.11.11 | 5165 |
2748 | 친구인가, 아닌가 | 바람의종 | 2008.11.11 | 7628 |
2747 | 불은 나무에서 생겨 나무를 불사른다 - 도종환 (92) | 바람의종 | 2008.11.11 | 5254 |
2746 | "그래, 좋다! 밀고 나가자" | 바람의종 | 2008.11.12 | 11925 |
2745 | 앞에 가던 수레가 엎어지면 - 도종환 (93) | 바람의종 | 2008.11.12 | 7204 |
2744 | 아는 것부터, 쉬운 것부터 | 바람의종 | 2008.11.13 | 5531 |
2743 | 사자새끼는 어미 물어죽일 수 있는 용기 있어야 | 바람의종 | 2008.11.13 | 7369 |
2742 | 기분 좋게 살아라 | 바람의종 | 2008.11.14 | 7202 |
2741 |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 바람의종 | 2008.11.15 | 5030 |
» | 가을 오후 - 도종환 (94) | 바람의종 | 2008.11.15 | 8086 |
2739 | 멈춤의 힘 | 바람의종 | 2008.11.17 | 5921 |
2738 | 통곡의 집 - 도종환 (95) | 바람의종 | 2008.11.17 | 7241 |
2737 | 영혼의 친구 | 바람의종 | 2008.11.18 | 6597 |
2736 | 뼈가 말을 하고 있다 | 바람의종 | 2008.11.19 | 5990 |
2735 | 깊은 가을 - 도종환 (96) | 바람의종 | 2008.11.20 | 7073 |
2734 | 다리를 놓을 것인가, 벽을 쌓을 것인가 | 바람의종 | 2008.11.20 | 4591 |
2733 | 침묵의 예술 | 바람의종 | 2008.11.21 | 7170 |
2732 |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들이 너무나 많다 - 도종환 (97) | 바람의종 | 2008.11.21 | 7149 |
2731 | 이해 | 바람의종 | 2008.11.22 | 6835 |
2730 | 상처 난 곳에 '호' 해주자 | 바람의종 | 2008.11.24 | 5209 |
2729 | 다음 단계로 발을 내딛는 용기 | 바람의종 | 2008.11.25 | 6192 |
2728 | 돈이 아까워서 하는 말 | 바람의종 | 2008.11.26 | 5771 |